Interview On
“열정은 나이를 잊는 것”
정크 아티스트 오대호
글_ 백미희 사진_ 박성수

정크 아트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2000년대 초반, 선뜻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그는
‘국내 1호 정크 아티스트’라는 명함을 얻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은 그는
70세를 눈앞에 둔 지금도 계속 ‘재미있는 것’을 찾는다.
그래서 그의 두 눈은 오늘도 어린아이처럼 반짝이고 있다.
<석유사랑>이 오대호 작가를 만나기 위해 충주시 양성면에 위치한 ‘오대호 아트 팩토리’를 찾았다. 과거 초등학교였던 이곳은 이제 폐품을 활용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장이자, 오대호 작가가 직접 만든 자전거 등의 탈 것을 자유롭게 타고 뛰어놀 수 있는 체험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0년대는 국내에 정크 아트라는 개념조차 낯설었을 때인데,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정크 아트에 발을 들인 건 50세 때의 일이에요. 이전에는 국내에서 최초로 자동차 튜닝도 시도했었고, 폐비닐을 활용해서 플라스틱 계란판을 만드는 공장도 운영했어요. 직원도 몇백 명이 되는 큰 공장이었죠. 그런데 제도 변화 때문에 공장이 어려워지면서 다른 기업에 넘기게 됐어요. 그렇게 여유 시간이 생기면서 생전 처음 낚시를 해보게 됐는데 그 낚시터에서 접한 잡지 한 권이 내 진로를 결정짓게 되었죠. ‘스텔라’라는 작가의 정크 아트였는데, 그 작품 하나가 200만 달러라는 거예요. 폐기물을 다루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원가가 딱 나오더라고요. 이 정도는 ‘나도 금방 만들 수 있겠다’ 싶었죠. 그때는 정크 아트의 의미보다는 사업가의 마인드로 접근한 것 같아요.
-
-
잘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내 생각과 아주 다르더라고요. 고물값도 천차만별이고, 어떤 고물을 가지고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쓸데없는 고물도 엄청 많이 샀죠. 게다가 정크 아트가 소재의 한계가 명확해요. 작품을 구상해서 ‘이런 모양이 필요하다’고 해도 찾아서 나온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어요. 고물끼리 연결해서 내가 원하는 형태를 하나처럼 만들기도 하고.
로봇, 공룡 등 동심을 자극하는 작업물이 많은데, 처음부터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만드셨나요.
호기롭게 정크 아트에 발을 들였지만 6개월쯤 지나자 내 위치가 객관적으로 보이더군요. 나는 미술도 해본 적 없는데 평생 예술을 해온 사람을 이길 수 없겠더라고요. 그럼 나만의 경쟁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싶었죠. 관념적인 미술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반인이 좋아하는 재미있는 예술’을 하자고 결론을 내렸죠. 그리고 갤러리에서 작품을 ‘판매’하는 것보다 입장료를 받고 많은 사람이 보고, 체험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봇이나 공룡을 만들면 좋겠더라고요. 그렇게 방향성을 정하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죠.
작품활동을 하다 보면 환경에 대한 생각도 남달라지셨을 것 같아요.
소재를 구하다 보면 세상에 버려지는 쓸만한 물건이 너무 많아요. 바퀴가 펑크 난 자전거 등 조금만 고치면 사용이 가능한데 버려지는 물건이 많더라고요. 물질문명이 발전할수록 쓰레기가 늘어나고 있고, 이것이 큰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저는 꼭 정크 아트를 위해서가 아니라도 자주 물건을 고쳐서 사용해요. 고물상에서 고장 난 오토바이를 발견하면 수리해서 타기도 하고, 버려진 옷 중에서 상태 좋은 걸 찾으면 빨아서 작업복으로 사용해요.
그리고 예전에 생산이 중단된 자동차의 부품 같은 경우에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내 작품 안에서 원래 모습을 보전한 채 숨 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중에는 ‘이 작품이 타임캡슐의 역할도 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주말이 되면 운동장이 북적북적할 정도로 체험객이 많이 온다고 들었어요. 단순히 보는 작품이 아닌 직접 타고, 만지고, 체험해 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드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크 아티스트로서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다른 전시회를 많이 다녀봤어요. 그런데 내가 운영하는 공간에는 ‘만지지 마시오’, ‘달리지 마시오’ 이런 안내문을 붙이고 싶지 않더라고요. 예술은 함께 공유하고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만의 갤러리를 열게 된다면 누가 와서 작품을 넘어뜨리고 망가트려도 터치하지 않으리’ 다짐했죠. 실제로 여기 오는 아이들한테도 망가져도 되니까 다치지만 말라고 당부해요. 작품이 대부분 움직이거든요. 로봇 관절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구동에 대한 원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새롭게 작품으로 재탄생한 쓰레기를 만져 보면서 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으면 하는 거죠. 내가 지향하는 예술은 ‘퍼니 아트’예요. 다 같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애들이 여기 와서 신나게 놀고 또 오고 싶다고 하는 게 최고의 찬사죠.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작품을 만들기 어렵지는 않으신가요.
70세가 코앞인데 아직도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요. 어렸을 때부터 탈 것을 좋아해서 나중에 커서 자동차 공장 사장한다고 했어요. 지금도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좋아하고 수시로 바꾸고 하죠. 아직도 아이인 거지.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들면 아이들도 좋아해요. 남들은 ‘영감을 어디서 받냐?’고 하는데, 뭘 만들어야 할지 고민한 적은 별로 없어요. 오히려 내 머릿속에 나온 작품을 먼저 만든 사람이 없는지 찾아보는 게 번거로워요.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까요.
지난해 대전에 효평마루 오대호 아트 팩토리가 문을 열었죠. 앞으로 3호점, 4호점이 나오게 될 수도 있나요.
이곳이 폐교를 활용한 공간이거든요. 기존에 폐교를 활용한 프로젝트가 많았는데, 성공한 케이스가 많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사실 오대호 아트 팩토리 지점 건립을 요청하는 곳이 많아요. 그런데 내가 작품활동을 20년 정도 했고, 이제 70세를 앞두고 있어요. 그동안 참 많은 일을 벌였는데, 이제는 정리할 때 같아요. 오대호 작가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지점보다는 내 작품의 정수를 모아 놓은 갤러리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20년 동안 6,000개 정도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리폼도 하고 액기스만 모아 놓는 거죠. 그곳을 무료로 누구나 와서 둘러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새로운 작품에 대해 구상도 하고 계시나요.
제가 예술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소재가 인체거든요. 그래서 인체를 시리즈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중에서도 소외받은 사람들, 장애에 대해 다뤄보고 싶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애인 후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2년 전에 손가락이 기계에 한 번 말려 들어간 적 있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색안경을 쓰고 보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거죠. 또 제가 교회를 다니는데 죽기 전에 한번은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어요. 두렵고 어려운 일이지만 꼭 해보고 싶은 과업이죠.
작가님의 삶 그 자체가 ‘열정과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국석유공사의 핵심가치이기도 한 ‘열정과 도전’, 작가님은 어떻게 정의 내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주변에 은행장, 변호사 등 ‘좋은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데 70세라는 나이를 앞두고 있으니 삶이 정체되더군요. 모아놓은 재산이 많아도 돈을 못 쓰고 뭘 시작하지도 못해요. 열정은 나이를 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도 계속 꿈을 꿔요. 내일은 뭘 할까? 뭘 하면 재밌을까 계속 생각하죠. 그리고 도전은 ‘일단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재고 따지다 보면 시작할 기회를 놓치게 되거든요.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면 일단 시작해요. 정크 아트도 일단 시작하고 차츰 작업 방식이나 작품에 대한 방향성을 잡았죠.
‘열정과 도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저질러야 도전이 생긴다. 나는 평생 붓을 잡아본 적도 없지만 요즘 그림을 시작했거든요. 내 로봇이 하늘을 날면서 비행기랑 싸우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려보는 거지. 재밌는 걸 자꾸 찾아서 시도해야 안 늙어요. 여러분, 재미있는 걸 찾으세요. 그리고 일단 시작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