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포커스 : 석유사랑 한국석유공사 웹진 : KNOC Webzine

오일 포커스

왜 석유기업이 에너지 전환을 주도하나?

석유개발과 저탄소 에너지 개발의 상관관계

글_ 조용채 교수(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바야흐로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다. 글로벌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탄소 저감을 위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눈부신 발전을 주도해 온 에너지원인 석유는 급격한 기후 변화의 주범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높은 수요와 산업에 큰 기여에도 불구하고 그 위상을 잃고 천덕꾸러기로 변해가는 모양새다.

현재 화석연료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하는 수소, 태양광, 풍력 등 청정에너지 후보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화석 연료의 완전한 대체재로 보기에는 에너지 효율과 인프라 등 여러 면에서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석유와 가스는 앞으로 반백 년간 이루어질 에너지 전환을 위한 완충재, 다시 말해 급격한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의 충격을 줄여줄 에너지원이다. 완충재(석유 가스)와 대체재(신재생에너지) 양쪽의 기술력을 가진 석유기업이 에너지 전환의 중심에 서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발전을 이룩한 에너지원

인류가 불을 발견했던 시절부터 에너지원의 발전은 시작됐다. 인류는 상당히 오랜 기간 나무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왔다. 나무에서 석탄으로 주 에너지원이 바뀌고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지난 과거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1860년대에 석유가 처음 발견됐고, 발견 초기에는 단순히 석탄의 대체 자원이나 램프 연료(등유) 정도로 인식됐으나 19세기 말에 미국이 석유를 선박의 연료로 사용하면서 중요 전략 자원으로 떠올랐다.

액체 상태의 석유는 석탄보다 부피가 작은데 효율까지 높았기 때문에 연료로서 확실한 장점이 있었다. 여기에 열강들이 해군력 증강에 열을 올리는 시기와 미국의 석유 보일러 선박의 개발이 딱 맞아떨어지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11년 미국이 석유만으로 기동하는 전함을 개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석유 시대가 열리게 됐다. 이때의 석유는 석탄에 비해 효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연소로 인한 분진 발생량 역시 현저히 낮았기 때문에 석탄을 대체할 확실한 연료로 주목받았다. 불과 100년 남짓한 기간 석유를 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 우리 인류는 탄생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산업과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석유는 석탄에 비해 효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연소로 인한 분진 발생량 역시 현저히 낮았기 때문에
석탄을 대체할 확실한 연료로 주목받았다

에너지원? 생산원료?

인류가 석유를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초고속 발전을 이루어낸 것은 석유가 비단 고효율의 에너지원일 뿐만 아니라 탄화수소 자체가 석유화학 공업의 생산 원료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석유화학 제품이 없다면 그 삶의 질이 떨어질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당장 우리 주위를 둘러봐도 석유 화학 공정을 거치지 않은 제품을 찾기가 더 어렵다. 또한 거대 석유기업들은 석유 가스 자원의 탐사, 생산 기술뿐만 아니라 원자재에 대한 공정 처리 기술을 지난 100년간 축적해왔다. 태양광, 수소 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청정에너지원들이 완전히 석유에서 독립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태양광 패널의 대량 생산과 공정 처리를 위한 생산 원료로 석유가 필요하며, 현재 석유를 대체할 만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받는 수소도 전 세계 생산량의 97% 이상을 석유에서 추출하고 있다.

석유기업의 자본력, 기술력, 인프라

현재 인류의 기술력으로 탄소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경제성이 있는 에너지원은 원자력이 유일해 보인다. 에너지의 생산과 공급망이 활성화되어 시장에 적극적으로 배치되고, 유의미한 파급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사업을 일으켜야 한다. 즉 기업이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사업 구조가 생성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직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청정에너지원들은 그 규모가 웬만큼 크지 않은 이상 사업 타당성 평가 단계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기가 어렵다. 달리 말하면 막대한 자본으로 대규모의 청정에너지 단지를 건설할 때 비로소 사업 운용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메이저 석유기업 중 하나인 쉘(SHELL)의 경우, 울산 해안선에서 약 60km 떨어진 해상에 2023년 기준 세계 최대의 부유식 해상 풍력 단지 건설을 계획 중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이미 해양 지반 탐사를 마치고 터빈과 블레이드를 비롯한 기초 구조 등 상세한 건설 계획안을 구상하고 있다. 200m에 이르는 대형 해상 구조물을 설치하고 유지할 수 있는 기술력은 일찍이 해상 플랫폼 건설과 운영으로 쌓아온 노하우 덕일 것이다. 해상 풍력 단지로부터 육상까지 이르는 송전망과 해저케이블의 설치와 유지 보수 역시 석유 기업들이 다루어 온 해저 송유관과 원격 조종 수중로봇(Remotely Operated Vehicle, ROV)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지하 공간을 다룸에 있어 가장 앞선 기술력을 보유한 석유기업은 광범위한 해양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석유기업에서 벗어나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쌓아온 석유 기업들의 상업 네트워크와 인프라 역시 신생 에너지 기업들에게는 큰 진입 장벽이다.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면, 기존의 주유소들을 수소 충전소로 변환하고 해당 충전소 지붕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탄소제로 에너지 공급망을 실현해 나아가고 있다. 또한 전 세계 수많은 석유화학 플랜트 역시 화학공학 기술의 집약체로 볼 수 있다.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고 기존 소재의 약점을 보완하는 등 가히 현대판 연금술이라 불릴 만한 재료공학·화학공학적 노하우는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에도 필수적인 기술이 될 수밖에 없다.

석유기업에 대한 음모론과 대에너지 전환

석유 경제와 시장은 일반적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르는 경제학과 그 결이 다르다. 매장량의 지역별 편중이 심한 자원인 만큼 생산력을 가진 주요 국가와 메이저 석유 기업들에 의해 글로벌 석유 시장의 전체 흐름이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메이저 석유 기업들이 중강소 신에너지 스타트업들의 인수합병으로 신재생에너지의 기술 개발 속도를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조절한다는 음모론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당연히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래 그래프(출처: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19)를 보면 석탄 소비량(회색) 바로 아래에 위치한 주황색이 신재생에너지의 에너지 소비량이다. 가스(적색)와 석유(녹색)를 합친 양과 비교해 볼 때, 극히 적은 양의 신재생에너지 기술과 관련된 수요를 조절한다고 해서 석유 가스 탐사·생산이 주요 사업인 석유 기업의 이윤이 증가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림] 에너지 종류에 따른 전 세계 소비량

앞서 말했듯, 석유기업들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오히려 에너지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블룸버그(Bloomberg NEF)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럽의 석유 기업들이 발 빠르게 저탄소,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면, 국가 경제의 석유 의존도가 큰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다소 더딘 면을 보인다. BP의 경우, 원래의 사명이었던 British Petroleum을 기지를 발휘해서 Beyond Petroleum으로 전환하면서 석유 기업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노력 중이다. NEF가 제시한 표에서 BP 바로 아래에 위치한 Equinor(노르웨이 석유공사) 역시 과거의 Statoil이었던 사명에서 석유라는 단어를 지워버렸다.

[그림] 주요 석유 기업의 에너지 전환 순위

[그림] 로테르담 항구의 수소 단지 개념도

ExxonMobil, Shell, BP등 메이저 석유기업들은 축적된 기술력과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로테르담 항구를 기점으로 대형 수소 단지와 청정에너지 컴플렉스 구축을 추진 중이다. 로테르담 프로젝트는 석유 기업이 다른 차원의 에너지 종합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시도하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석유 기업들은 누구도 음모론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기후변화와 탄소 중립 에너지 기술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대에너지 전환의 시대에 에너지 공급의 청정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글로벌 에너지 수요에 맞추어 안정적인 공급을 통해 시장에 급격한 에너지 전환의 충격이 없도록 조절하는 것 역시 테슬라나 반도체 기업, 빅테크 기업이 아닌 석유 기업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