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유 산업다각화가 중동에서 피할 수 없는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1997년 미국에서 시작한 셰일에너지 혁명 때문이다. 수압파쇄법을 이용하여 지하 2,000~4,000m 사이 셰일층에 퍼져 있는 석유와 가스를 모아 끌어 올리면서 미국은 2011년에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가스 생산국이 되었고, 2018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밀어내고 세계 최대 원유생산국 자리에 올랐다.
현재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은 미국이다. 셰일에너지 혁명으로 중동 산유국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형국에 몰렸다. 거센 미국의 도전에 대응하여 거대 석유생산국 카르텔인 오펙은 비오펙 국가와 힘을 합쳐 2016년 9월 오펙플러스를 결성하였다. 오펙의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오펙의 러시아가 주도하면서 유가를 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오펙플러스는 22개국(오펙 12개국, 비오펙 10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화석연료(석유와 가스)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펙플러스의 유가 조정에 기대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985년생의 젊은 지도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새로운 사우디아라비아 건설을 열정적으로 외치는 이유다.
무함마드 빈 살만은 원유 매장량 세계 2위의 사우디아라비아를 탈화석연료 산업다각화 성공 국가로 만들고자 한다. 지난해 9월 20일 미국 팍스뉴스(Fox News)와 인터뷰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은 1970년 말 사우디아라비아의 GDP가 한국을 앞섰으나 현재는 뒤처졌다고 지적하면서 경제 발전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무함마드 빈 살만이 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금으로 운영하는 정상적인 나라다. 산업다각화란 결국 세금을 낼 회사나 개인이 있는 경제를 말한다.
화석연료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를 지대국가(地代國家 Rentier-State)라고 한다. 건물주가 세입자의 월세에 의존하는 것처럼 산유국은 오로지 자원 수출대금에 기대어 살았는데 이제 더는 그렇게 나라를 운영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서려 있다.
따라서 기업을 유치하고, 기업은 사우디아라비아 주민을 고용하며 산업 구조를 새롭게 세운다. 기업은 법인세를, 피고용 주민은 소득세를 낸다. 그리고 한국산, 미국산, 일본산, 중국산 등 수입품 대신 사우디아라비아산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 유가를 예상하여 다음 해 국가 예산을 짜지 않고 세입을 기준으로 살림살이를 꾸리는 정상적인 국가를 꿈꾼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로 변화하는 것은 말이 쉽지,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지대국가는 세금을 걷어 운영하는 국가체제와 달리 대체로 권위주의가 팽배한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다. 국민은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돈을 벌기보다는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데 길들어져 있다. 이제 그런 국민을 깨우쳐 생활 전선으로 보내야 한다. 예전처럼 나누어 줄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작한 국민 일자리가 우버 택시다. 자동차 구매 융자도 제공한다. 학교 선생님도, 경찰도, 군인도 일과 시간을 마치고 우버 택시를 몰며 돈을 번다. 외국인에 맡겼던 택시 운전이 점차 사양산업으로 저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하지 않고 국가에 의존하던 국민 의식에도 변화가 인다. 물론 국민 의식이 무함마드 빈 살만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35세 이하 젊은 층이 전 국민의 67%를 차지하는 젊은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자리를 주기 위해서 외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그런데 똑똑한 여성을 집에만 가둬 두고 국가 발전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더욱이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 분야를 전공하는 여학생이 50%에 달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기업이 여성 1명을 고용하면 남성 3명 채용으로 계산하여 여성의 사회진출을 장려한다. 여성 운전을 허용하고, 정숙하게만 입으면 머리나 얼굴을 가리는 전통적인 복장을 하지 않아도 되게 복식 문화도 바꾸었다. 남녀를 엄격하게 구분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전통적인 보수 이슬람 문화를 제어하면서 온건한 이슬람 문화국가로 종교 문화 색채까지 엷게 만드는 작업이 함께 이루어졌다.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되고, 종교장벽을 넘는 탈지대국가로 달려간다.
온건 이슬람 문화국가로 간다는 말은 세상과 소통한다는 말이다. 외교관 대상이긴 하지만, 주류 판매를 허용한 것도 변화의 단면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두바이를 제치고 리야드를 지역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한다. 더 많은 사람이 리야드에 오길 바란다. 이를 위해 전통 이슬람 문화의 문턱을 낮게 한다.
2029년 동계 아시안 게임, 2030년 리야드 엑스포, 2034년 월드컵 등 굵직굵직한 국제행사를 유치하여 이른바 MICE산업으로 GDP를 높이려 한다. 네옴 신도시, 트로제나 관광단지, 옥사곤 부유산업단지, 신달라 휴양섬, 리야드 신도심 무랍바 등 거대 규모의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꽉 막힌 사우디아라비아식 이슬람 문화를 유지한다면, 누가 리야드 공항에 내리겠는가?
두바이가 보여주지 못한 것을 보여주면서 두바이 관광객의 발길을 리야드로 돌리게 하려면 최소 두바이만큼은 자유롭고 편한 마음으로 돌아다니게 해주어야 하기에 변화는 필수적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광객 유치 목표는 2030년 1억 5천만 명이다. 두바이와 달리 환승객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가 최종 목적지인 사람들로 두바이를 압도하겠다는 야심을 지니고 있다.
관광객이 증가하고 경제가 발전하려면 중동 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야 한다. 2019년 9월 14일 예멘 후시 반군이 동부 아브까이끄와 쿠라이스 유전시설을 드론으로 공격하여 하루 원유생산량의 절반인 500만 배럴이 날아갔다. 이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이웃과 차가운 평화라도 맺어야 한다. 2015년 3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주축이 되어 시작한 예멘 전쟁을 멈춘 이유다. 또 예멘 후시 반군의 후원국인 이란과도 더는 얼굴을 붉혀서는 곤란하다.
2017년 10월 살만 국왕은 “호메이니 혁명 이후 현재까지 이란 정권은 전 세계 테러를 이끌어왔다. 1979년 호메이니 혁명이 시작되기 전 300년간 우리나라는 테러나 극단주의를 모르고 살아왔다. 이란은 선량한 이웃들을 모두 거부하였다”며 1979년 이래 중동을 혼란의 장으로 만든 나라로 이란을 지목하며 비판하였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아버지와 같은 생각으로 이란을 보며 거침없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난 30여 년간 일어난 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모습이 아니다. 지난 30여 년간 이 지역에서 일어난 일은 중동의 모습이 아니다.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여러 나라에서 [이란의] 모델을 베끼려고 하였는데, 사우디아라비아도 그 중 하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문제가 전 세계로 퍼졌다. 이제 이를 없앨 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해 3월 이란과 손을 잡고 7년 만에 대사급 외교를 재개하였다. 바꿀 수 없는 이웃과 얼굴을 계속 붉히다 가는 탈화석연료 산업다각화가 골자인 사우디아라비아 비전 2030 계획을 실현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란에 투자하겠다는 의지까지 보이고 있다. 경제 우선 실용주의 정책을 펴는 것이다.
중국을 봉쇄하고자 중동에서 한 발 빼려는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서,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나라와도 협력하겠다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말 그대로 적 없이 서로서로 연결된 세상을 꿈꾸고 있다. 일극이나 다극이니 하는 말은 모두 극이 있음을 전제로 하지만, 극이 없는 세상은 서로서로 연결됨을 뜻한다.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그렇다.
따라서 브릭스 가입을 두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와 중국 편에 섰다고 하는 말은 옳지 않다고 무함마드 빈 살만은 이야기한다. 브릭스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주춤한 상태지만, 궁극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날이 올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