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생은 고달픈 것입니다. 고달프지 않고 힘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죠. 전 요즘 사람들이 계속해서 편해지려고 자기 자신을 부리는 것 같아요. 얼마만큼 편해지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터뷰와 강의를 명분 때문에 해요. 오늘 울산을 온 것도 마찬가지고요. 자기 이익을 생각하는 건 돈이고, 남을 생각하면 희생이고 봉사죠. 그런데 그 두 가지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명분입니다. ‘나의 유익한 부분 때문에 산다, 너를 유익하기 위해 봉사한다’가 아니고 중간 상태인 명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고 싶은 메시지가 어디 있어요. 개인적으로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청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메시지를 줘야 해요. ‘뭘 원할까?’ 생각해 보는 거죠. ‘내가 우울한 날, 이 사람들이 나랑 똑같이 우울하면 안 된다!’, ‘내가 살아온 것처럼 명랑하고 가능한, 그리고 극복해 낸 얘기들을 하면서 청중들 또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것을 전달하고 싶은 거죠.
사회가 이렇게 혼란스럽고 사람들이 ‘힘들다, 어렵다’ 하는 건 너를 몰라서 그래요. 가까운 사람들끼리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나에 너도 포함해서 더불어 같이 가는 너와 나가 됐으면 좋겠어요.
왜 이 시가 사람들한테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요. 잘사는데도 잘산다고 생각하지 않고 예쁜데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받는데도 사랑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도 누군가가 오래 보면 예쁘고 사랑스럽겠구나’라는 것을 ‘풀꽃’을 통해 찾아낸 거죠. 그냥 잊고 있던 것 뿐이에요. 원래대로 돌아가는 겁니다. 떨어진 자존감이 제자리로 간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어요. 살고 싶은 삶, 그냥 살아가는 삶, 살아내는 삶. 직장인들은 살아가거나 살아내는 삶이에요. 발동을 걸어서 힘을 줘야 자전거 페달이 돌아가는 것과 같죠. 인생이란 가만히 앉아서 버튼만 누르면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양손에는 무거운 짐도 들려 있어서, 가파른 계단을 끙끙대며 오르게 되죠. 그것이 살아내는 삶입니다. 그렇게, 잘 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