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를 넘어,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다
Q.
여행을 깊이 있게 경험하려면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지난 5년간 매년 EBS 촬영에 참여해 탄자니아, 노르웨이,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에게는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은 기회입니다.
혼자 여행할 때는 주로 장소 자체에 집중합니다. 어디가 아름다운지, 어떤 풍경이 특별한지를 먼저 보게 됩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풍경만으로는 긴 이야기를 채울 수 없습니다. 결국 현지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들의 집을 방문하고 함께 식사하며, 그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를 가까이 들여다봅니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는 장소를 중심으로 보았다면,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부터는 사람을 중심으로 여행하게 됐습니다.
여행지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눈에 띄는 풍경이지만, 그곳의 의미를 오래 남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세계테마기행> 탄자니아 편 (출처: EBS 다큐)
Q.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기억에 오래 남은 만남이 있나요?
어떤 단 한 번의 경험 때문에 삶 전체가 바뀌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수많은 경험이 조금씩 쌓여 지금의 태도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스리랑카 산골 마을에서 만난 꽃 파는 청년이 기억에 남죠.
그곳에는 자동차가 산길을 따라 이동할 때마다 꽃을 팔기 위해 산을 가로질러 달리는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한 지점에서 꽃을 팔고 나면 다시 산을 뛰어넘어 자동차보다 먼저 다음 지점에 도착해 기다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온종일 맨발로 산을 달려도 하루에 버는 돈은 1만~2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세계테마기행> 스리랑카 편 (출처: EBS 다큐)
하루 동안 함께 촬영한 뒤 그 청년의 집에도 방문했습니다. 꽃을 파는 일은 단순히 개인의 생업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생계를 지탱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스물여섯 살이던 그는 어머니와 같은 침대를 사용하고 있었고, 돈을 벌 때마다 벽돌을 조금씩 사서 집 뒤편에 새로운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촬영을 마친 뒤 출연료 명목으로 300달러를 건넸습니다. 적지 않은 돈이었는데, 그는 돈을 받자마자 우리를 안내해 준 현지 운전기사들에게 100달러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돈이었을 텐데도 전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은 어느 정도의 마음에 이르러야 물질에 대한 집착에서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 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나누는지가 삶의 풍요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