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의 기후 위기
눈이 안 오는데
동계올림픽은 어디서 개최하나요?

저자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

호모 루덴스의 기후 위기 비쥬얼 이미지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은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2개 도시에서 분산 개최되는 올림픽이다.
밀라노와 코르티나는 420여 ㎞나 떨어져 있어 자동차로 이동하면 5시간 정도 걸린다.
이탈리아는 국가적 자존심을 이유로 막대한 비용과 환경 부담을 감수하며 새 경기장을 건설했지만,
그 선택은 ‘지속 가능한 올림픽’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충돌했다.
기후위기로 개최지는 빠르게 줄어들고 대회의 비용과 부담은 커지는 지금,
100년 전의 개최 원칙이 여전히 유효한지 다시 생각해 볼 시점이다.
완전한 자국 개최를 위한
이탈리안 자존심의 대가
“우리는 이번 올림픽을 100% 이탈리아에서 개최할 겁니다. 이건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예요!”
이번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은 이탈리아가 유치했지만, 하마터면 이탈리아에서 개최되지 못할 뻔했다.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루지 대회를 열 경기장이 없어서다. 당초 재활용하려던 ‘에우제니오 몬티 트랙’은 지어진 지 한 세기나 지난 탓에 고쳐 쓰는 건 불가능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는 데 따른 비용 증가와 환경 영향, 빠듯한 일정을 우려하며, 인접한 오스트리아나 스위스에 있는 시설을 활용해 대회를 치를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모든 경기를 자국에서 치르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올림픽을 자국에서 완전히 치러내지 못한 최초의 국가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가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지불한 대가는 적지 않다.
이탈리아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또 언제 쓸지도 모를 경기장을 짓는 데
1억 1800만 유로(원화 약 2천억 원)의 거금을 들여야 했다.
조직위는 봅슬레이·루지·스켈레톤 경기를 위한 ‘코르티나 슬라이딩 센터’를 새롭게 짓고 있다. 2026년 2월이라는 완공 날짜를 받아 든 만큼 시일은 촉박했고 건설비는 더 늘어났다. 수십 년간 방치된 2006 토리노 올림픽 트랙을 바라보면 허탈감은 배가 된다.
이탈리아가 자존심을 지킨 대가는 이탈리아가 혼자 지불한 것이 아니다. 1730 미터에 달하는 트랙은 단순한 얼음 길이 아니라 강철 파이프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공학적 구조물이다. 이탈리아는 새로운 경기장을 건설하면서 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전 지구적 탄소예산을 낭비했다. 그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변화의 첨봉에 서야 할 올림픽 유치국으로서의 역할을 방기하고, 2021년 지구의 미래를 위해 전 세계가 승인한 올림픽 어젠다(Olympic Agenda) 정신을 퇴행시켰다. 이웃 나라의 트랙을 활용했더라면 모두 피할 수 있었던 문제다. 프랑스는 자국 내 경기장이 없는 대회는 다른 나라에서 치른다는 안을 수용한 덕분에 2030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코르티나 슬라이딩 센터
용도: 봅슬레이·루지·스켈레톤 경기장
규모: 트랙 약 1,750 m / 16개 커브
건설비: 약 1,829억 원 추정(로이터)
코르티나 슬라이딩 센터(출처: IBSF 국제봅슬레이연맹)
이탈리아 정부의 욕심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국가적 자존심보다 더 강력한 올림픽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어렵게 따낸 기회인 만큼 욕심을 내려놓기 쉽지 않다. 하지만 크게 보면 꼭 손해만은 아니다. 지구의 미래와 지속 가능한 올림픽을 위해 ‘올림픽을 영토 밖에서 치러낸 최초의 국가’라는 유산을 후손들에게 남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는 대회 장소에 관한 한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국가 위주의 올림픽 개최지 선정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황에 짧아지는 스커트처럼…
기후위기에 짧아지는 올림픽 후보지 명단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열기는 엄청났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이 30년 만에 개최한 대회이자 한국의 첫 동계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유일한 동계올림픽으로 남을는지도 모르겠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펀딩한 연구에 따르면, 2050년 평창은 더 이상 동계올림픽을 치를 수 없다. 겨울 끝 무렵인 3월, 동계 패럴림픽을 치를 무렵이면 눈이 다 녹아서다. 동계올림픽을 치르려면 3월까지도 최소 30cm 이상의 눈이 쌓여 있어야 한다. 역대 동계올림픽 개최지의 기상 조건을 보면, 평균 최고 일일 기온이 1920년대~1950년대 0.4°C였으나 21세기 들어서는 6.3°C까지 상승했다. 올림픽마다 인공눈을 쉴 새 없이 뿌려대는 이유다. 평창은 동계올림픽 역사상 위도가 두 번째로 낮은 개최지였다.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 과거 올림픽 개최지 가운데 평창부터 탈락할 것이 당연하다. 역대 동계올림픽 개최지 21곳 중에서 2050년에도 대회를 치를 수 있는 곳은 절반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마저도 2080년대에는 4~10곳으로 줄어든다.
동계올림픽 후보지를 역대 개최지에서 찾지 말고 새로운 지역으로 열어놓고 보면 옵션은 조금 더 많다. 같은 연구에 따르면, 2050년대 대회 개최가 가능한 도시는 17~31곳이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올림픽의 관점에서 ‘눈이 많이 오냐’는 개최지를 선정하는 수많은 기준 중 하나일 뿐이다. 새로운 경기장 건설이 초래하는 환경 영향과 높은 비용을 고려하면 사실상 유효한 후보지 명단은 이미 나와 있다.
10개의 ‘올림픽 도시’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여기 매우 유력한 대안이 있다.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 새로운 대안에 따르면 지금처럼 매번 새로운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선정할 필요가 없다.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기상 조건과 인프라를 갖춘
‘올림픽 도시’를 10개 미만으로 선정해 두고
이들 도시에서 순환 개최하자는 아이디어다.
장점은 많다. 기존에 이미 구축된 경기장 인프라를 사용하니까 새로운 시설을 지을 필요가 없다. 신규 경기장을 만들지 않으니까 온실가스 배출, 자원 낭비, 생태계 파괴 등의 환경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도 아낄 수 있다. 개최지가 고정되니까 올림픽 투자 유치도 수월하고, 장기적인 계획 수립도 가능하고, 선수와 팬들도 대회 준비가 편해진다. 또한 주최 측은 대회 운영의 노하우와 지식을 쌓을 수 있어 회를 거듭할수록 매끄럽고 효율적인 대회 진행이 가능하고, 시민 봉사 참여 및 협력 기반 역시 탄탄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물론, 소수의 올림픽 도시가 대형 국제대회가 가져오는 경제적, 문화적 발전 기회를 독점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할 만하다. 하지만 세상에 동계올림픽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계올림픽도 있고, 아시안게임 등 다양한 지역 게임과 FIFA 월드컵 등 다양한 국제 스포츠 대회가 충분히 많다. 기회는 다른 곳에도 얼마든지 있다.
…이를테면 ‘록키 산맥 대회’요?
다른 대안은 ‘한 국가에서 굳이 모든 올림픽 게임을 치를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한 국가에서 16개 종목의 백여 개 경기를 다 치르려고 하니까 올림픽을 개최할 후보지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거다. 사실 인접한 두세 개 지역의 인프라를 합쳤을 때 동계올림픽의 모든 종목 경기를 다 치를 수 있다면 지역 단위로 올림픽을 치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를테면 ‘동알프스 대회’다. 이번 동계올림픽을 이탈리아(밀라노)와 오스트리아(인스브루크)가 공동 개최하는 ‘동알프스 대회’로 추진했더라면, 공연히 슬라이딩 트랙을 조성하느라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지 않고도 인스브루크에 있는 기존 시설을 활용해 지금보다 훨씬 비용효율적이고 기후친화적인 대회를 치를 수 있었을 것이다.
올림픽 경기장이 국경을 넘어도 좋다면
지역 단위의 대회 개최지 옵션은 얼마든지 다양하다.
캐나다 캘거리와 미국 덴버가 손을 잡고
‘록키 산맥 대회’를 치를 수도 있다.
두 록키 산맥 지역이 뭉치면 적합한 하키 경기장이 없는 캘거리도, 하키 경기장은 있지만 다른 시설이 부족한 덴버도 모두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참여할 수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과 라트비아 시굴다가 공동 개최하는 ‘발트해 대회’도 가능하다. 스웨덴에는 라트비아에는 없는 높은 산이 있고, 라트비아에는 스웨덴에 없는 슬라이딩 트랙이 있으니까!
100년 전과는 다르다
이탈리아가 이번 동계올림픽을 통해 국가적 자존심을 지켜낸 데 만족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 이탈리아가 자존심을 지켜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존심을 걸 필요가 없는 데다 자존심을 걸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경기를 100% 자국 영토에서 치러내야만 자존심이 선다고 믿는다면 한참이나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이탈리아만 그럴 리 없다. 다른 나라라고 달랐을까.
시대가 변했다.
지금은 100년 전 첫 동계올림픽을 시작했던 때와 다르다.
100년을 사용하면 무쇠솥도 망가지는 법.
올림픽도 시대적 요구에 맞게 게임의 룰을 재검토할 때가 됐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데 괜한 자존심은 걸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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