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루덴스의 기후위기
그래도 축제는 계속된다: 위기의 축제들

저자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

호모 루덴스의 기후 위기 비쥬얼 이미지
지역의 소중한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축제조차도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낭비한다는 비난을 비껴가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축제를 중단해야 할까?
기후위기 시대, 존폐 위기에 몰려 고군분투 중인 지역축제들이 있다.
위기의 축제들, 그들은 어떻게 변신하고 있을까?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제주들불축제’는 2024년에 한 해 쉬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 행사인 ‘오름 불놓기’를 계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오름 불놓기는 새별오름 남쪽 경사면 26만㎡ 억새밭을 태우는 행사로, 제주 지역의 전통 관습인 ‘방애’를 재현한다. 하지만 산불 위험과 환경파괴, 온실가스 배출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축제는 존폐 위기에 몰렸다.
애월읍 새별오름 일대에서 개최된 ‘2025 제주들불축제’에서 조명을 활용한 디지털 불놓기를 진행했다. (출처: 뉴시스)
그리고 2025년, 제주들불축제는 오름 불놓기 대신 ‘디지털 불놓기’를 들고 화려하게 돌아왔다. 지난 3월에 개최된 올해 축제에서도 오름 불놓기는 미디어 아트로 대체됐다.
‘인형’ 태우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고?
불은 프로메테우스가 올림포스에서 훔쳐 온 직후부터 줄곧 사람들을 매혹해 왔다. 강렬하게 눈앞에 존재하지만 감히 손으로 만질 수 없고, 콩알만큼 작았다가도 순식간에 집채만큼 커지는 불가사의한 마법을 부리는 통에 드래곤이라면 모를까 인간은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또 불이 지나간 자리는 어떤가? 아무리 크고 높게 존재감을 자랑해도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저 한 줌의 재만 남을 뿐이다. 사람들은 불을 무서워하면서도 동시에 동경했다. 그래서 불은 전통 의식에도 등장하고 축제에도 등장한다. 사람들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마음에 쌓인 응어리를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해방감도 만끽한다. 불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행사를 치르는 개연성이자, 그날의 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장치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과 관련한 전통이 있고 오늘날까지 축제의 형태로 계승되는 이유다. 스페인 발렌시아의 불꽃축제 '라스 파야스(Las Fallas)' 도 그렇다.
발렌시아 도시에 설치된 거대 종이 조형물(파야) (출처: maestromio.org)
시청 광장에 세워진 메인 파야 (출처: fineandcountry.es)
‘파야스’는 발렌시아어로 불꽃, 횃불을 의미한다. 축제에서 이 불꽃은 인형 태우기로 일어난다. 거대한 인형들을 모아 한날한시에 불태워버리는 '라 크레마(La Cremá)' 는 단연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사람들은 일 년 동안 공들여 만든 각양각색의 대형 조형물들이 거대한 불길을 내뿜으며 으르렁거리다가 한 순식간에 화르르 소멸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구태 청산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봄을 맞아 낡고 오래된 것들을 태워서 없애버리는 발렌시아 지역의 풍습은 중세 시대부터 지켜져 내려온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축제 기간 동안 예술가들이 만들어 전시한 거대 인형들을 마지막 날에 불태우는 크레마 행사로 라스 파야스의 대미를 장식한다.
(출처: 발렌시아 공식 홈페이지)
비록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문화 축제지만, 막대한 미세먼지와 오염물질을 방출해 대기질을 악화시키고 다량의 온실가스와 쓰레기를 배출한다는 비난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라스 파야스에서는 한 번에 800여 개의 대형 조형물을 태운다.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인형들은 주로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져서 불에 태우면 이산화탄소는 물론 각종 유해가스가 배출된다. 하루 만에 다 태울 건데 그 많은 재료와 에너지 써가며 왜 만드냐는 비난도 일리가 있다. 그리고 축제 기간인 19일 동안 매일 열리는 폭죽놀이 ‘마스클레타(Mascletà)'도 문제다. 마스클레타의 정수는 불꽃이 아니라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과 주변을 자욱하게 만드는 연기에 있다. 이때 자욱한 연기는 각종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의 혼합물이다.
폭죽의 리듬과 높낮이, 폭발의 순서와 시간을 조절해 리드미컬하게 연출한 마스클레타는 ‘화약 콘서트’라고도 불린다.
(출처: 발렌시아 공식 홈페이지)
발렌시아 시는 2024년에 처음으로 ‘녹색 파야스’ 축제를 선언했다.
수백 년을 이어져 온 전통이지만 시대의 요구에 맞게 변신하는 것도
살아있는 축제의 의무인 까닭이다.
시는 2030년까지 모든 조형물을 지속 가능한 재료로만 만들겠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조형물을 제작하는 예술가들이 스티로폼 대신에 나무, 종이죽, 그리고 식물성 부산물로 만든 스티로폼 대체재 네오프스(Neops) 등 자연 친화적인 재료를 사용하고, 기존의 라카 대신 물에 녹는 무독성 페인트를 활용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발렌시아 지역 대학교와 협력하여 조형물 주변에 IoT 센서를 설치해 소각 시 발생하는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를 실시간 측정하고, 이 데이터를 활용하여 축제의 탄소배출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기로 했다. 시는 나무심기를 통한 탄소 상쇄에도 적극적이다.

인형 태우기는 라스 파야스의 정체성이다. 이때 동원되는 인형을 만들기 위해 발렌시아 각 지역에는 400개에 가까운 지역별 위원회가 설립돼 있고 10만 명 이상의 주민이 가입해 있다. 이들은 인형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고 어떤 예술가를 고용할지 결정하며 축제 운영 요원으로 직접 참여한다. 라스 파야스는 그야말로 지역의 정체성과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공동체의 구심점인 셈이다. 게다가 지역 일자리 창출 및 경제적 파급효과도 스페인의 모든 축제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그렇다면 인형 태우기 축제는 중단하기보다 계속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
전통문화 축제라고 변화하지 말란 법은 없다.
변화는 양보나 타협이 아니라 발전이다.
중세 시대부터 라스 파야스가 수백 번의 변신을 거듭해
오늘에 이른 것처럼!
“먹는 거로 장난치지 말랬지?”
토마토가 가득한 광장에서 사람들이 서로 토마토를 던지며 노는 장면, 미디어에서 많이 봤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 중 하나인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 ‘라 토마티나(La Tomatina)’다. 라 토마티나는 1945년부터 매년 8월 마지막 수요일에 스페인의 작은 도시 부뇰(Buñol)에서 개최된다.
라 토마티나 축제 참여자들이 서로를 향해 토마토를 던지고 있다. (출처: 토마티나 공식 홈페이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토마토 싸움을 하는 장면을 보며 혀를 끌끌 차지 않았을까? ‘먹는 거로 장난치면 안 되지!’ 그렇다. 세계적인 토마토 축제도 음식을 먹지 않고 아깝게 낭비한다는 비난을 비껴가지 못했다. 기후위기로 식량공급이 불안정하고 아직도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재배한 식재료를 먹지도 않고 버리면 자원이 낭비되고, 동시에 음식물 쓰레기도 너무 많이 발생해 온실가스가 대량 배출된다는 것이다.

토마토 싸움이 축제의 정체성인데, 그렇다고 토마토 싸움을 중단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시는 축제를 지속하느냐 마느냐의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토마토 축제는 이미 세계적인 인지도를 확보한 지역의 대표 관광 상품으로, 인구 1만 명의 작은 도시 부뇰의 경제적 오아시스였다. 부뇰은 말 그대로 토마토 축제 빼면 시체나 마찬가지다. 시는 어떻게든 토마토 축제를 지속 가능한 축제로 변화시킬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시는 먼저 축제에 사용할 토마토의 공급망을 점검했다. 먹을 수 있는 토마토 말고, 무르고 상했거나 하자가 있어 폐기해야 하는 상품성이 없는 B급 토마토를 공수했다. 그리고 토마토 싸움이 끝나고 바닥에 버려진 토마토는 예전처럼 물을 뿌려 하수로 흘려보내지 않고 수거해서 비료로 만들어 지역 농장에 공급하는 자원순환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토마토 싸움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였다. 매년 4~5만 명에 달하던 입장객 수를 2만 명으로 제한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큰 효과가 있었다. 축제에서 버려지는 토마토 물량을 줄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장객이 줄면 축제가 창출하는 경제효과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여기서 시는 축제를 유료화하는 과단성을 발휘했다. 시는 입장료를 10유로로 책정하고 제한된 수량의 티켓을 판매했다. 부뇰은 축제를 둘러싼 경제성과 환경성의 절묘한 균형을 영리하게 잡아냈다.
잃어버린 카타르시스를 찾아서
불을 포기한 축제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줄게 마련이다. 불이 축제의 주요 테마라면 더욱 그렇다. 카타르시스는 축제의 핵심적인 순기능이다. 불을 포기하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과 환경보호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사람들이 상실한 카타르시스는 고민으로 남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절체절명의 기후위기 앞에서 그까짓 카타르시스가 뭐가 중요하냐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으면 영화를 보라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영화도 탄소를 많이 배출한다.
인류의 문화유산이 환경성과 충돌할 때,
무조건 환경성이 우선한다는 데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지구가 있어야 문화도 있다고? 물론이다.
하지만 문화가 없으면 인간도 없다.
축제의 정체성이 기후 대응 흐름과 맞지 않는다면, 이때부터는 문화성과 환경성, 경제성의 쟁쟁한 대결이 펼쳐진다.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어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대결이다. 이럴 때는 계산기만 두드리지 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령, 새별오름의 묵은 잡초가 탈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크게 봐서는 매우 미미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문제 삼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여기저기서 너무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비닐봉지와 일회용 플라스틱, 유행 따라 산 옷가지들, 빈번한 자가용 사용 때문에 오름 불놓기라는 전통 풍습의 재현을 포기하게 된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일상의 편의가 전통의 가치와 맞바꿀 만한 대등한 교환가치를 가지는지 자문하게 된다. 일상에서 의미 없는 소비만 잘 줄여도 오름 불놓기 정도는 충분히 이어 나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자, 이제 축제의 가치를 아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자명해졌다.
당신이 호모 루덴스라면 당장 일상의 탄소부터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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