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미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에서는 하루 수십 수백 개의 메시지가 바삐
오간다. 그렇지만 개인들 사이의 유대감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전대미문의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서점의 베스트셀러 진열대에는 이와
같은 삶의 방식으로부터 오는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명상과 마음 다스리기 방법을 안내하는 책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외롭고, 모두에게 도움이 필요하고, 수런거리는 마음과 온갖
고민들로 머릿속이 복잡한 게 분명하다.
인류는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크고 작은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만큼 낭만적인 것도 없는데, 현실엔
낭만적이지 않은 상황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인지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표지의 담백한 한 마디가 조금은 아프게, 저만치
미루어두었던 관계의 낭만을 자극하는지도 모르겠다.
유례 없는 팬데믹과 하루 낮밤으로 뒤바뀌는 초고속의 시대, 여기
사람의 연결에 주목하는 이가 있다. 작가 김민섭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1. 어쩌면 책 제목만큼 잘 드러나지 않는 이름이 작가의 이름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가님의 책을 읽은 분들 중에서도 작가님의 이름이 낯선 분들이 분명 있으실 듯한데, 한국석유공사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민섭이라고 합니다. 책 쓰는 일을 하고 있어요. 10년 쯤 전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썼고, 대리운전 일을 하면서는 <대리사회>라는 책을 썼어요. 얼마 전 출간한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이 ‘유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게 됐습니다. 지금은 강릉에서 작은 출판사와 서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고요,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이름의 비영리법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는 김민섭 작가가 첫 해외여행을 앞두고 불의의 사정으로 항공권을 취소해야하는 상황이 되어, 항공권을 양도하기 위해 동명의 김민섭 씨를 찾으면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사실 시작은 ‘프로젝트’도 아니었다. 양도자를 찾고자 페이스북에 게시글을 올린 지 사흘 째 93년생 대학생 김민섭 씨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이후, 한 고등학교 선생님의 숙박비 지원부터 관광패스 이용권까지 생면부지의 ‘김민섭’ 씨를 돕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2박3일 동안 270여 명의 사람들이 항공권 양도 게시글을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로 만들었다.
Q2.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가 꽤 화제가 되었잖아요. 그야말로 전국민 ‘프로젝트’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하신 건 아니었다고 하셨는데, 일이 좋은 의미로 스노우볼처럼 커지는 걸 보며 솔직하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사실은 그냥 신기했어요. 출국장에서 93년생 김민섭 씨를 만났을 때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나왔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죠. 그러고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고요. 그때 김민섭
씨가 제게 한 말이 저를 다른 삶의 궤도로 올려줬어요.
“잘
다녀올게요. 그리고 저도 03년생 김민섭 씨에게 이렇게 여행을
선물해주겠습니다.” 라고요. 김민섭 씨를 보내고 집으로 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그리고 왠지 나도 오늘을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이 될 것 같다고요.
Q3. 요즘엔 SNS 덕분에 관계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다 연결되어 있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고민에 ‘인간관계’ 고민이 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인간관계’란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인간관계’를 고민할까요?
관계라는 건 누구에게나 중요하니까 고민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건강한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가도 중요하다고 봐요. 제가 생각하는 건강한 관계란 ‘서로에게 기대하지 않음’에 핵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명확한 기준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단한 개인이 있고, 이렇게 단단한 개인이 만드는 연결이 관계의 시작이라고 보거든요.
Q4. 선의를 주는 쪽에서는 ‘동정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고, 도움을 받거나 어떤 조건 없는 위로를 받을 때는 그 후의에 빚을 진다는 느낌이 들곤 해요. 감정적 부담감이나 부채감 없이 연결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나누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선의라는 감정이 거래가 되기 쉽더라고요. 내가 너한테 이만큼
해줬으니까, 너를 위해 희생했으니까 너도 이만큼은 돌려줘야 한다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감정이 거래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그 이전에 내가 왜 다정하려고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내가 남을 위해서 다정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해 다정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옳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과 태도이기 때문에
선의를 건네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뭘 돌려받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고요.
저는 이런 이기적 이타심이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강한
방식의 이타심이라고 생각해요. 그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도 항공사에서
십분의 일 환불이 아니라, 삼분의 일 환불만 해줬다면 시작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거든요. (웃음)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얼마 만큼을 받았으니까 이
사람한테는 이 정도 갚아야지, 그런 마음도 중요하지만 이 사람이 왜
나를 도우려고 했는지를 이해하고, 나 역시 당시의 나를 닮은
누군가에게 선의를 건네야겠다고 생각해야만 ‘감정의 거래’에서 벗어나
건강한 선의의 순환을 만들 수 있죠.
Q5. 관계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강의도 나가보고 서점에서 사람들도 만나보고 하며 사람의 변화에도 민감하실 듯해요. 코로나19라는 사태를 거치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느끼는 바가 있으신가요?
어른들도 사람 사이가 각박해졌다고들 하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었다고들 하잖아요. 저는 아이가 있다 보니 책이나 유튜브로 아이를 위한 동화를 종종 보곤 해요. 어렸을 때 읽던 전래동화의 교훈, 기억하시나요? 착한 일을 하면 아무튼 좋은 일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최근의 동화를 보면 ‘기지를 발휘해서’, ‘영리하게’ 난관을 헤쳐나가는 이야기가 많아요. 아이에게 바라는 첫 번째 가치도 현명함, 똑똑함이 되었구나 싶더라고요. 설령 각자도생의 시대가 맞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만큼은 착하게 살아도 좋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좀 많아져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어른으로서 좀 부끄럽지요.
Q6. ‘아, 이걸 주제로 이야기를 써야지.’ 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가도, 막상 글을 쓰다 보면 막힐 때가 있잖아요. 창작이 막힐 때에는 어떻게 하세요?
글이 막힐 때는 반성부터 해요. 잘 못 쓰는 데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반성이죠. 하루를 잘 살았으면 쓰고 싶은 게 많이 생기게 마련이거든요. ‘오늘만큼은 대한민국에서 내가 제일 열심히 살았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하루를 정말 바쁘게 살았는데도 쓸거리가 하나도 없다면 ‘좋은 하루’를 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글이 잘 안 나온다면 나 자신을 중심으로 의미있는 질문을 했는지, 나를 기준으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을 했는지 돌이켜보는 거죠.
Q7. 소설, 에세이 등 장르를 떠나서 무언가를 쓰는 직업을 동경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작가님은 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하시고, 또 좋은 글감이 떠오르면 어떻게 하시나요?
일상적이고 소소한 일들을 하면서도 ‘좋다’, ‘즐겁다’, ‘예쁘다’ 외에
한 가지 정도 물음표를 더 던져봐요. 이런 건 평소에 일을 하는
삶에서도 가능해요. 일하는 삶이라는 건 언제 일어나고, 직장에
출근해서 어떤 일을 하며 언제쯤 퇴근하는지까지가 매뉴얼화
되어있잖아요. 그런 루틴화된 삶 가운데에서도 물음표를 만들고 답을
해보는 거예요. 똑같은 하루를 똑같이 기록하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다른 방법으로 생각해보고 기록해 보세요. 글쓰기에 굉장히 도움이 될
거예요.
또 한 번 떠오른 좋은 표현이나 글감은 다시 찾아오지 않으니까,
그때그때 기록하는 게 중요해요. 저도 생각해볼 만한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다시 찾아볼 수 있게 메모해둬요.
Q8. 멋진 장소에 서점이 있어요. 강원도 출신은 아니신 걸로 알고 있는데, 서점을 이곳에 여신 이유가 있나요?
첫째 아이가 7살 즈음일 때, “우리 바다에 한 번도 안 가본 것
같아.” 그러더라고요. 듣고 보니 정말 아이를 데리고 바다 한 번
가본 적이 없었기에 가족 다 함께 바다를 보러 갔어요.
바다를 본 아이가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전에 없이 재미있게 놀고,
행복해하고. 그러다 아이가 언젠가 “우리 바닷가에 살면 안 될까?”
하고 물었어요. 질문을 듣고 아내 얼굴을 쳐다보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웃음)
Q9. 일정한 업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일에 종사하시는 셈인데, 불규칙적인 생활로 곤란했던 경험이라든지, 어려운 일은 없으신가요? 혹은 의외로 이런 삶이 맞다는 걸 발견하셨나요?
실은 예전의 저는 계획한 게 틀어지거나, 제 루틴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길 때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모든 불확실한 것들을 사랑하게 됐죠. 누군가는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삶, 어제 일하는 장소와 오늘 일하는 장소가 다른
삶을 보고 “어떻게 그러고 사냐.”고 하지만, 정해지지 않은 삶이라는
건 오늘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불확실함은 아무것도 아닌
결과가 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론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여기저기 다니며 일을
하다 보면 겸사 응원하는 팀의 원정 경기를 볼 수도 있어요. 출장
나가서 일도 하고, 원정 나온 우리 팀 경기도 보고. 이런 즐거운 삶이
어디있나요?
Q10. 일과 삶의 보람, 인간관계로 고민 중인 한국석유공사 독자 여러분들에게, 새해를 맞아 한 마디 해주신다면?
파울로 코엘료의 <아처>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궁수들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수련을 한다고요. 궁수들은 전장을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떤 순간에도 화살을 명중시킬 수 있어야 하잖아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까닭,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까닭은 재난에 가까운 상황이 왔을 때에도 나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나 자신이
꾸준히 생각하지 않으면 불의의 상황에서 나를 지킬 수 없게 되죠.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삶의 의미란 어딘가에 도착할 때만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이든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요. 결과는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이든 조직이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게 되면 그 과정
자체가 가치가 돼요. 내가 왜 이 일을 선택했고, 왜 이런 삶을
선택했는지 분명한 이유와 믿음이 있다면 ‘잘 안돼도’ 괜찮게 돼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