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 1 그랑프리 드 모나코 2023
서킷 드 모나코(Circuit de Monaco)는 까다롭기로 말하면 전 세계 1등이다. 포뮬러 1(이하 F1) 서킷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느린 코너와 가장 빠른 코너가 모두 이곳에 있어서다. 코너 변화가 급격한 데다 도로 폭은 추월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아서 다른 어떤 서킷보다도 드라이버의 높은 기량이 요구된다. 모나코 서킷을 타본 한 드라이버는 마치 "거실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까다롭다고 했다. 하지만 지중해 연안을 따라 카페와 가게가 즐비한 몬테카를로의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전설적인 서킷인 까닭에 F1의 많은 드라이버들이 이곳에서의 우승을 꿈꾼다. 올해 F1 모나코 그랑프리는 6월 5일부터 7일 사이에 열렸다. 전 세계에서 25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모나코를 찾아와 구불구불한 거리를 바람처럼 질주하는 ‘머신’들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영화 007에서나 볼 법한 낭만과 스릴 그 자체였다.
서킷 드 모나코 회로 (출처: F1 공식 홈페이지)
F1의 2030 탄소중립은 무리수?
F1의 경주차는 시속 350km를 달린다. 속도로는 자동차와 비행기 그 사이 어디쯤이다. 드라이버는 급커브를 돌 때 중력가속도의 대여섯 배에 달하는 압력을 버텨야 하고,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리는 경기 시간 동안 분당 170~
190회에 이르는 심박수를 견뎌야 한다. 그 와중에 운전대의 복잡한 버튼을 조작해 실시간으로 차량의 세팅을 바꾸려면 0.001초의 반응속도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F1 드라이버는 올림픽 선수 수준의 초인적인 신체 능력과 체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F1은 스포츠다. 인간이 ‘머신’을 제어하며 한계를 돌파해 내는 익스트림 스포츠다.
‘F1 더 무비’ 주인공 소니 헤이스의 경주 장면
(출처: 네이버 ‘F1 더 무비’ 포토)
티타늄 재질의 스키드 블록(Skid Block)이
트랙 노면과 마찰하여 불꽃이 튀는 모습 (출처: 하입비스트)
F1은 이제 ‘머신’만 제어해서는 안 되고
탄소까지 제어해야 하는 최고난도의 숙제를 떠안았다.
다른 모든 스포츠 종목처럼
F1도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F1을 총괄하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은 지난 2020년 UN 스포츠 기후 행동 프레임워크(UN Sports for Climate Action Framework)에 공식적으로 가입했다. 그런데 탄소중립 시대에 가장 큰 난관에 봉착한 스포츠야말로 F1이 아닐까? 기름으로 작동하는 자동차가 경기에 필수적인 데다, 그마저도 속도 대결이라 순간 태우는 기름양이 엄청날 테니까 말이다. F1의 탄소중립, 대체 실현할 방법이 있기나 할까?
F1은 “203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 제로(0) 달성 목표를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 F1 공식 홈페이지)
이 와중에 F1은 203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야 말았다.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최소 50% 감축해서 2030년에는 탄소순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F1이 아무 계획도 없이 덜컥 약속해 버린 건 아닌 모양이다. 이미 2018년 이후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28,793톤에서 168,720톤으로 26%나 감축했다니 말이다!
가장 위기의 순간에 가장 혁신적인 돌파구가 나오는 법이다. 그렇다면 F1이야말로 탄소중립을 위한 혁신과 변화가 가장 기대되는 스포츠다.
트랙 위 탄소를 잡아라!
우화에서는 쉬지 않고 길을 가는 거북이가 이기지만, F1에서는 쉬었다 가는 토끼가 이긴다. 이번 시즌 첫 경기였던 F1 호주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메르세데스의 조지 러셀은 빠르게 가속을 붙이다가도 어느새 제동을 걸어 속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해서 우승을 따냈다. 분명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경기 운영 방식이었다. 여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기술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로 2026 시즌부터 전기모터의 출력 비중이 대폭 강화돼 내연기관과 거의 1:1의 비중으로 동력을 분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기모터의 특징은 제동을 통해 에너지를 회수하여 배터리를 재충전한다는 점이다. 배터리 잔량이 부족해지면 드라이버가 공격적으로 주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드라이버는 가속과 제동을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직선 구간에서는 최대한 가속해서 배터리를 소진하고, 코너에서는 강력한 회생 제동으로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누가 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관리하느냐가 승패를 가르게 된 셈이다.
F1 호주 그랑프리 결선에서 접전을 펼치는 조지 러셀(앞) (출처: 메르세데스 F1)
올해부터 적용된 또 하나의 큰 변화는 100% 지속 가능 연료 사용을 의무화한 것이다. 지속 가능 연료는 화석연료 대신에 폐기물 기반 바이오매스, 대기 포집 탄소, 도시 폐기물을 활용해서 생산된다. 연료 생산부터 사용까지 전 과정에서 탄소 순배출량이 제로이다. 당장 올해부터 모든 경주차는 지속 가능 연료를 사용하며 트랙 위를 달렸다.
F1의 머신들은 극한의 기술 경쟁 끝에 탄생한
단언컨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가장 효율적인 차다.
F1의 혁신이 없었더라면, 오늘 우리가 이용하는 모든 자동차의 효율성은
지금보다 더 떨어졌을 것이고, 기후·환경에도 더 나쁜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F1 경주차는 단순한 트랙 위 전시품이 아니라, 더 넓은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로켓 발사대 같은 것이다.
진짜 범인은 트랙 밖에 있다
전기모터를 활용한 하이브리드 엔진 시스템을 구비하고 100% 지속 가능 연료를 사용하면 트랙 위의 탄소는 얼추 다 잡을 것 같다. 그런데도 F1의 탄소중립은 실현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트랙 밖에서 배출되는 나머지 99%의 탄소 탓이다. 트랙 위 탄소는 빙산의 일각이었던 셈이다. 그러면 거대한 빙산의 몸통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F1과 다른 스포츠의 핵심적인 차이점은 ‘이동’과 ‘물류’의 복잡성에 있다. F1은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 개최되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매년 개최되고, 일 년 내도록 대륙을 옮겨가며 20회 이상의 대회가 열린다. 2026년 시즌만 해도 3월 호주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12월 두바이 그랑프리까지 22회의 경기가 22개의 서로 다른 장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때 경기를 한 번 치를 때마다 드라이버와 경주차는 물론 수십 명에 이르는 엔지니어와 스태프, 엔진과 타이어 등의 부품, 모터홈 자재, 각종 장비 등이 함께 이동한다. 가까우면 트럭 수십 대로 이동하지만, 장거리 이동일 때는 항공과 해상 수단을 이용한다. F1이 배출하는 탄소의 40%는 물류에서, 40%는 스태프 이동에서 배출된다. 결국 F1의 탄소중립은 물류와 이동에 달린 것이다.
글로벌 물류 기업 DHL은 2004년부터 F1과 공식 물류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출처: DHL)
F1은 2019년에 지속가능성 전략을 발표하며, 물류와 이동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한 장기적인 노력을 약속한 바 있다. 당장 이번 시즌에도 물류와 스태프의 이동 거리를 줄이기 위해 22개 대회 일정을 지역별로 묶었다. 중국 그랑프리와 일본 그랑프리를 3월에 묶고, 캐나다 그랑프리는 미국 그랑프리가 열리는 5월로 앞당겼으며, 6월부터 9월까지는 모나코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마드리드 그랑프리까지 9개의 유럽 대회가 연이어 개최된다. 특히 유럽 그랑프리에서는 물류 부문의 바이오 연료 트럭 사용을 확대해서 탄소 배출량을 평균 83% 가까이 줄였다.
F1의 각 팀은 거대한 R&D 센터의 역할을 하는 공장을 갖고 있는데, 여기서 배출되는 탄소량 또한 전체 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할 정도로 상당하다. 이에 F1의 팀 공장들은 풍력과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 사용량을 늘려서 7~8년 전 대비 탄소배출량을 약 60% 가까이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