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자원안보 특별법
에너지·자원은 부존 여건에 따른 대체 불가능성 때문에 국가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안정적 공급방안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자원 빈국으로서 대부분의 자원을 수입해야 하고 제조업 비중이 큰 우리나라는 국가 안보와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위하여 안정적인 자원 공급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도시가스사업법>, <광업법>, <해외자원개발사업법> 등과 같이 에너지원별 대상의 개별법으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 왔다. 그러나 특정 에너지원만을 고려한 개별법에 의존했기 때문에 공급망 대란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 자원수급의 불안, 주요국의 자원 무기화 강화,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가격 급등이 반복되는 상황이 계속됐다.
공급망 불확실성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과 수입·비축 현황을 미리 관리해 자원안보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이 제정되어 2024년 2월 6일 공포되었고 2025년 2월 7일부터 시행되었다. 법제처에 따르면 이 특별법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 국민의 복리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제정되었다. 이를 위해서 자원안보에 관한 위기에 대비하고 위기 발생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여수산업단지 정유공장의 석유화학공장 파이프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은 위기 시에만 자원안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 수급이 안정적일 때에도 꾸준히 자원 수급 상황을
살피면서 대비하고 위기를 감지하는 체제를 갖추도록 하였다. 이 법은
우리나라 경제에서 자원이 갖는 역할을 재평가하여 경제체제 자체를
평시에 대비하고 위기 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체제로 진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국가자원안보 특별법> 제3장 제2절 제15조에서는 핵심 자원의
공급과 수요의 관리와 관련하여 비축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본 칼럼에서는 전량 해외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핵심 에너지자원인
석유와 천연가스의 비축 역사와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석유 비축
석유 위기에 대비하기 위하여 정부는 1980년 6월부터 국가 석유비축계획을 수립하고 원유 비축기지와 제품 비축기지를 건설하는 등 본격적인 석유 비축 사업에 착수하였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에 따르면, 비축의 목적은 ‘석유수급’과 ‘가격안정’에 있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석유 비축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포함한 비축계획을 수립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정부는 수급 차질 대응 또는 순환저장 등을 목적으로 석유비축시설을 대여하거나 비축유를 일정 기간(원유 60일, 석유제품 90일 기간 내) 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국제적으로 비축시설 및 비축유를 활용하기 위한 국제 공동 비축과 비축유 트레이딩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 세계 4위 석유 순 수입국, 세계 8위 석유 소비국임에도 높은 중동 의존도, 낮은 자주 개발 원유 확보율 등으로 석유 위기 대응 능력이 주요 석유 수입국들과 비교하여 낮은 실정이다. 지난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중동 산유국 중심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 수출을 제한하며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에너지 소비국들이 결성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회원국에 비축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대상국 중 하나다. 석유 비축은 크게 민간 비축과 정부 비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석유공급자들의 정상적 생산·판매 활동 수행 또는 대규모 수요자의 정상적 소비를 위한 비축은 민간 비축이다. 산유국으로부터의 공급 중단이나 수송상 등의 장애로 인해 공급 차질이 생기는 경우에 대비하여 정부가 전략적으로 관리·운영할 때 정부 비축 또는 전략 비축이라고 한다.
2024년 말 기준 모두 9개 원유 및 석유제품 비축기지가 운영되고 있으며, 총 1억 4,600만 배럴의 저장용량을 갖추고 있다. 비축시설 중 87%는 원유저장 시설이고 나머지 13%는 휘발유, 등유, 경유 및 LPG 저장시설이다. 현재 국제 공동 비축을 제외한 9,900만 배럴의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다. 정부 비축은 원유에 치중함으로써 제품 위주의 민간 비축과 보완 관계에 있다.
IEA는 석유 수출국의 생산량 할당제를 통한 공급조절 정책에 대처하는
수단으로 회원국들에게 순수입량의 90일분 이상의 석유 비축을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비축 일수는
115일로 일본 121일, 프랑스 82일, 독일 92일과 비교할 때 동등하거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의 공적 비축은 중단기 정부
계획에 근거해 시행되는데, 현재 ‘제4차 석유비축계획(2014~2025년)’에
따라 공적 비축유를 1억 배럴까지 늘릴 예정이다. 또한, 2026년부터
적용될 제5차 석유비축계획 수립 작업을 진행 중이며 친환경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암모니아를 비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산유국 원유를 우리나라에 비축하고 보관 수수료 수익을 얻는 방식의
‘국제 공동 비축사업’도 유용한 석유 안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석유공사는 2023년 아랍에미리트 국영 석유사인 ‘ADNOC’과 사업 계약을
체결하고 아랍에미리트산 원유 400만 배럴을 여수 비축기지에
유치했다. 2024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사 ‘Aramco’와 530만
배럴에 달하는 원유 공동 비축 유지 계약을 맺었다.
천연가스 비축
LNG의 형태로 수입되고 있는 천연가스는 2022년 기준 국내 총에너지의 15%와 발전량의 21%를 담당하는 핵심자원으로서 연간 4,500만 톤을 수입하고 있다. LNG가 세계 천연가스 지역 간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5%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천연가스 수요의 전량을 LNG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여전히 국제 LNG 시장의 구조적 변동과 공급 안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LNG는 그동안 국내 유일 가스도매사업자인 한국가스공사에서 비축을
담당해 왔다. 2021년 가스공사의 비축의무량을 기존 7일분에서
9일분으로 상향하고 비축의무량 산정 시 불용재고(Dead Stock)를
제외해 실제 사용 가능한 물량 기준으로 산정 방식을 변경하였다.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정부가 민간 LNG 사업자에게도
한시적으로 LNG 비축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민간사업자의 LNG
비축을 의무화한 대신 민간사업자들의 비축 LNG 물량을 국내 제3자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LNG 터미널은 LNG 운반선을 통해 운송된 LNG를 인수해 저장했다가 이를
기화시켜 배관망을 통해 수요처로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다.
한국가스연맹 자료(2024년 12월 기준)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는
평택(23기)과 인천(23기), 통영(17기), 삼척(12기), 제주(2기) 기지를
운영 중이며 당진기지(7기)를 건설 중으로 2025년 운영을 앞두고 있다.
민간은 포스코인터내셔널(6기), 보령LNG터미널(7기),
통영에코파워(1기), 울산의 코리아에너지터미널(2기)이 기지를 운영
중에 있고 2026년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2026년
포엔이에이치(2기), 2027년 동북아 LNG 허브 터미널(3기), 2028년
포스코인터내셔널-LX인터내셔널(2기)의 터미널 준공이 계획돼 있다.
거제도,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및 대형 해상 크레인
현재 국내 LNG 저장설비 용량은 연간 일평균 소비량의 50일 정도이며, 가스도매사업자에게 부과되고 있는 상시 비축 물량 규모는 9일분인데 동절기 기준 물량은 국내 일평균 소비량의 15일분 정도에 해당한다. 허가받은 신규 설비가 모두 준공되면 연간 처리용량이 총 1억 8,000만 톤으로 늘어나 LNG 저장용량은 780만 톤 규모가 된다. LNG 탱크 전체를 다 채울 경우 연간 소비량의 17%를 비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