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1945년 공식적으로 협력관계를 맺은 이후 현재까지 강력한 ‘비즈니스적 동맹 관계’를 구축해왔다.
비즈니스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두 나라가 서로 안보와 석유를 거래하는 형태의 상호 동맹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설명한다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은 혼란스러운 중동 정세 속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보호하고,
그 대가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안정적으로 미국에 석유를 공급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밀접한 동맹 관계를 잘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1974년 양국 간 체결한 ‘페트로 달러 협정’이다.
이 협정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거래할 때 달러로만 결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를 계기로 미 달러는 세계 통화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으며,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됐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공고한 관계를 이어오던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두 나라는 2000년대 이후 조금씩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2001년 9·11테러의 배후가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관계가 어색해졌고, 미국 내 산유량이 급증하며 중동 석유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것이 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이후에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란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도 했으며, 2018년 터키에서 발생한 반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피살사건의 배후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하면서 양국 관계는 점차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특히 반사우디아라비아 성향을 대놓고 드러낸 바이든이 미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더욱 냉기류가 흐르고 있는 가운데 올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은 이 같은 상황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전쟁의 영향으로 유가가 폭등하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은 반색했으나,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 사태에 이은 유가 급등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은 직접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가 ‘최고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에게 석유 증산을 요청했다. 그러나 10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이 큰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이하 OPEC+)’가 미국의 증산 요구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일 200만 배럴 규모의 감산을 결정하면서 양국 관계는 1945년 이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은 OPEC+의 감산 결정이 산유국인 러시아의 재정을 강화시켜,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돕는 결과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로지 경제성만을 따져 산유국들이 논의한 결과”라며 미국의 비판을 일축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반발을 불러온 OPEC+의 감산 결정은 유가 하락을 미연에 방지함과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바이어들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산유국들의 포석이 깔려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결국 석유로부터 시작된 양국 간 동맹은 아이러니하게도 석유로 인해 깨질 위기에 봉착했다. 물론 복잡한 국제정세와 불안한 중동지역의 안보, 그리고 산유국임에도 중동산 원유에 의존해야 하는 미국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향후 관계 회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석유를 둘러싼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동맹 악화는 양국 간의 문제를 넘어 석유 수입국과 산유국 간 갈등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글로벌 석유기업들은 이 같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향후 행보를 고민하는 중이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이번 OPEC+의 감산 결정으로 고유가가 유지될 전망이며, 이에 따라 기업들도 러-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누리고 있는 높은 수익을 이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번 감산 조치가 단순히 산유국의 이익 보전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석유 시장에서 공급자가 주도권을 갖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경우 고유가 상황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석유기업들의 입장에서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이미 다수 국가가 고유가로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낸 석유기업에게 횡재세를 징수하거나 징수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감산 결정은 각국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유사들에게 가격 인하를 요구하며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결국 감산으로 인해 고유가가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수입국들은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석유기업에게 ‘분풀이’를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 장기적으로는 산유국의 감산이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는 수입국들의 의지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이미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와 SMR(소형모듈형원전), 그린수소 등 석유·가스를 배제한 친환경 연료 개발에 활발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산유국의 감산 결정이 조금씩 다가오는 화석연료의 종말을 더욱 앞당길 것으로 전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미-사우디아라비아 갈등→석유 감산→고유가 지속’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당장은 석유기업들의 고수익을 유지시켜 줄 수 있겠으나,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에게 결코 반가운 상황은 아닐 것이다.
현재로선 향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회복될지, 아니면 더욱 악화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세계 석유시장과 기업들의 시선이 이들 두 나라에 집중되고 있다.

글권준범(에너지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