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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시대,
석유업계의 딜레마와 생존전략

코로나19 팬데믹이 끝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이번에는 고유가라는 시련이 전 세계를 덮쳤다.
현재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높은 유가는 코로나19 진정 국면 이후 원유 수요가 급증한 것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의 원유 수출입에 제동이 걸리면서 공급량이 크게 낮아진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원유 수요 급증과 예상치 못한 공급 감소가 동시에 발생하자 치명적인 유가 급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치솟은 유가는
우리나라와 같은 원유 수입국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유가가 오르면 기름값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생활물가가 동반 상승하게 된다.
이처럼 고유가로 인해 국민의 생활은 물론 국가 경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석유기업들은 어떠한 전략을 펼치고 있을까?

‘고유가 특수’ 톡톡히 누리고 있지만···

전 세계적인 고유가 상황으로 글로벌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것과 달리 해외 메이저 정유사 및 국내 정유사는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쉘은 올해 1분기에만 91억 달러, 한화 약 11조 5,000억 원을 벌어들였다. 이는 2021년 1분기 순이익(32억 달러) 대비 무려 184%나 증가한 것으로, 직전 분기(64억 달러)와 비교해도 42%나 늘어난 규모다. 엑손모빌은 2분기에 약 180억 달러(23조 4,000억 원) 규모의 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5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BP 역시 1분기 순이익이 10여 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으며, 토탈에너지와 에퀴노르도 유가상승에 힘입어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또 글로벌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사우디 아람코의 1분기 순이익은 약 395억 달러(50조 7,000억 원)로 전년 대비 82% 늘었다. 지난 2019년 기업 공개(IPO) 실시 이후 최대 실적이다.
국내 정유사들 역시 고유가 덕을 톡톡히 봤다. 정유사별 1분기 영업이익은 SK이노베이션 1조 6,000억 원, 에쓰오일 1조 3,000억 원, GS칼텍스 1조 800억 원, 현대오일뱅크 7,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의 이익을 냈다.
이처럼 정유 기업들은 올해 1·2분기에 호실적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으나, 대내외적으로 고유가 상황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먼저 고유가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역주행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석유기업을 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지난 6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엑손모빌의 높은 실적을 두고 “신보다 돈을 더 벌어들였다”라고 언급했다. 유가 급등으로 소비자들의 부담이 큰 상황에서 ‘나 홀로 잘나가는’ 엑손의 행보를 지적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미국 내 석유 기업에 휘발유 가격을 “당장 낮추라”라고 압박했다. 이는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영국은 지난 5월 석유·가스 기업에 한시적으로 25%의 초과 이윤세(횡재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와 헝가리, 스페인 등도 이에 동참했다.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정유사들의 고통 분담을 촉구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정유사의 초과 이익 환수를 위해 관련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으며, 정부 역시 유럽처럼 횡재세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다. 2년 전 코로나19로 인한 석유 수요 감소로 정유업계가 큰 적자를 기록할 때는 관망하다가 이제 와서 수익 환수를 논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미래 대비하는 석유업계

정부의 압박보다 석유 업계에 더욱 부담을 주는 것은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석유산업이 완전히 퇴출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유가 급등 훨씬 전부터 세계적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보이콧 붐이 일면서 세계 각국은 전기차 및 재생에너지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왔다. 특히 수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관련 기술 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 상황이 진정되지 않을 경우 신재생 에너지 개발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지고, 결국 석유 퇴출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고민이다. 특히 기술의 발전으로 전기차 가격이 이전보다 낮아지면서 휘발유나 디젤과 같은 기존의 내연기관차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고유가 장기화는 전기차 보급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해외 메이저 기업들과 정유업계가 고유가로 확보한 이익을 유전개발이나 증산에 재투자하는 것이 아닌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 사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메이저 기업들은 일찌감치 미래 먹거리를 탈탄소와 친환경으로 정하고 해상풍력, 수소와 같은 친환경 에너지 개발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며, 기업의 홍보 방향도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국내 정유사 역시 마찬가지다. SK이노베이션은 태양광, 연료전지 발전으로 생산된 친환경 전기를 전기차 충전에 활용하는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을 추진 중이다. 이는 기존 주유소를 대체하는 ‘미래형 주유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에쓰오일은 그린수소 및 그린암모니아 사업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바이오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정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현재의 고유가 상황이 언제 변하게 될지, 그리고 그 변화 폭이 어느 정도인지는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계속되는 고유가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석유기업이 향후 석유 사업 대신 친환경 사업에 주력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바로 그것이 고유가 시대에 석유 업계가 살아남기 위한 ‘미래의 생존전략’이다.

글권준범 기자(에너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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