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On

“우리의 삶엔 적정과 행복이 필요해요”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

지난 2년여간 우리를 불안하게 한 코로나19 팬데믹이 막을 내리고 나면 우리 삶은 보다 편안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러우 전쟁과 이로 인한 고유가, 물가 상승 등의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왔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말한다. “우리가 지치지 않기 위해선 삶과 관계에 적정이 필요하고,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선 끊임없는 행복이 필요하다”라고.
그를 만나 삶을 더 잘 살기 위한 태도와 지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안녕하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요즘 1.5 철(?) 정도 된 것 같아요. (웃음) 요즘 부쩍 기업 강의, 뇌 과학과 관련된 기업이나 스타트업 관련 자문, 그리고 방송 관련 일들이 좀 늘긴 했어요.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제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교육과 연구예요. 이래 봬도 학과장인걸요.

Q

요즘 심리학과 관련된 방송이나 도서 등이
이전보다 많아지고 사람들의 관심도 커진 것 같아요.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젊은 세대를 보고 “애들이 고생을 안 해봐서 애들이 철이 없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반대로 젊은 세대는 윗세대에 “어른들은 선택지가 별로 없어서 고민이 별로 없었겠지만, 우리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고민이 많아요”라고 말하죠. 어른들은 몸이 고생한 세대, 젊은 사람들은 고생 보다는 고민이 많은 세대인 거죠.
기본적으로 심리학이 발달한 나라는 ‘고생보다는 고민이 많은 나라’ 그리고 ‘우리보다는 나에 대해서 더 많이 들여다보는 나라’예요. 고생은 몸이 힘든 것이고 고민은 정신이 힘든 거죠. 최근 우리나라도 점점 고생보단 고민이 더 많은 사회, 집단보다는 나를 돌아보는 사회가 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심리학이 당연히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거고요. 게다가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집단으로 뭉쳐있던 것을 개개인으로 떨어뜨려 놨으니,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게 된 거죠.

Q

전문 분야인 인지심리학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인지심리학은 실험심리학의 영역 중 하나예요. ‘행동의 주관적인 측면을 중시하여 지식 획득과 심리학적 발달 등 연관된 정신적 과정을 탐구하는 심리학의 분야이자 정보처리 관점에서의 인지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정의하죠. 말이 어렵죠?
수십 년간 연구해오며 제가 생각한 인지심리학의 정의는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환경을 바꿔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해 주는 학문이라는 거죠.

Q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것, 왜 중요할까요?

사람이 가장 쉽고 빠르게 불행해지는 방법 중 하나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고, 살면서 허망해지는 것 중 하나는 ‘바꿀 수 있는 것을 그냥 놔뒀을 때’예요.
그러니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한다는 건 내가 가진 시간과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중요 포인트이기도 하고요. 내가 가진 것 중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잘 구분하려면 적어야 해요. 나에 대해 적다 보면 나를 바꿨던 상황이나 일, 그리고 안 바뀌는 것들에 대한 리스트가 생기겠죠. 계속 적어가며 나의 데이터를 쌓아가는 거죠.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일기를 밤에만 쓴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해요. 변화를 느끼거나 불편함을 느꼈다거나…. 어떤 상황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바로바로 적는 거죠. 저 같은 경우는 “몇 시부터 몇 시 사이엔 논문이 잘 써진다”, “ KTX 홀수 자리는 조금 불편하니 피하자”, “○○주차장은 주차가 정말 힘들다”처럼 사소한 것들까지도 적는 경우가 있어요. ‘뭘 이런 것까지’라고 생각할 순 있지만 남들한테 중요하진 않더라도 제겐 정말 중요한 문제거든요.
사람은 기록에 의지해야 하는데 대부분 기억에 의지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기억이 왜곡되기도 하고 잊히기도 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 때도 있고요. 그런데 실수한 자신을 한탄하면서도 여전히 기록하진 않죠. 그러다 결국에는 남의 기록에 의존하게 돼요. 어딜 가거나 혹은 정보를 찾을 때 타인이 기록해놓은 정보를 몇 시간씩 할애해서 찾고 정독하는 거죠.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타인의 기록엔 내가 찾는 정보가 없는 경우도 많거든요. 예를 들어 남이 기록한 것을 토대로 여행 계획을 세워 간다 치면 남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대로 여행하고 온 셈이 돼요. 이런 것이 반복되면 내 기준이 아닌 남의 기준대로 삶을 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겉돈다는 느낌까지 들게 돼요. 그래서 저는 무계획보다 더 나쁜 게 무기록이라고 생각해요.

Q

요즘 MZ 세대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MBTI를 많이 쓰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일단 MBTI를 성격검사로 생각하는 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성격이라는 것은 잘 변하지 않는 개인의 고유한 속성이거든요. 그런데 MBTI 결과가 몇 년마다 바뀌는 것이 이상하죠. 그러면 ‘MBTI는 바보 같은 검사냐’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는데 그건 또 아니에요.
안약을 눈에 넣으면 좋은 약이지만 먹으면 독약인 것처럼 MBTI가 대표적인 성격검사인 양 오남용되는 것이 문제라고 봐요. MBTI가 잘 측정해 주는 것은 내가 지난 3년 동안 어떤 사회적 카드로 살았느냐를 보여주는 거예요.
요즘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면접을 볼 때 ‘E(외향형)’냐 ‘I(내향형)’냐 인 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 같더라고요. 보통 신입사원들은 I와 E 중에 I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전무와 같은 높은 위치인 경우는 E가 많고요. 신입사원들은 남의 말을 잘 경청해야 하는 위치에 있고, 전무는 주로 주도적으로 이야기하는 위치에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죠.
MBTI 결과를 가지고 자기소개서나 소개팅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낙인찍거나 상대방을 쉽게 판단하는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결과를 토대로 이런 질문을 해야 해요. “나는 지난 3년 동안 만족스럽게 살았는가?”라고요.
그 결과가 타인이 인정하는 나뿐만 아니라 자신도 만족스러웠다면 나는 제대로 된 사회적 카드를 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잘못된 사회적 카드를 썼으니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 다른 노력을 해볼 필요가 있는 거죠. 실제로 MBTI는 브릭스 마이어스 모녀가 홈스쿨링을 하면서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유형과 그에 따른 다양한 접근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게임적 요소가 강한 검사였어요. 그런데 다양성을 알고 배우기 위한 검사가 한 사람을 극단적으로 낙인찍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니 오남용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Q

저서인 <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에서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도구다”라고 하셨는데요, 무슨 뜻일까요?

제가 강의에서 조금은 극단적이지만 “운동선수들에게 왜 몇몇 약물 복용을 금지하는 걸까요?”라는 질문을 하곤 해요. 그러면 “금지된 약물을 복용하면 훈련을 안 해도 근육이 늘고 신체 능력이 좋아지니까”라고 대부분 답합니다. 틀린 답은 아닌데 반만 알고 계시는 거예요. 금지 약물을 복용하면 선수가 1시간 만에 그것도 아주 많은 행복을 느끼게 돼요. 다른 선수들이 2시간 후에 있을 혹독한 훈련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반면, 금지된 약물을 복용한 선수는 평소 깨지 못했던 한계와 갱신해야 하는 기록이 시련이 아닌 도전하고 싶은 즐거운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신체적 능력이 더해져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는 것이죠.
행복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죠.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시련을 겪게 돼요. 당장의 시련을 이겨내고 다독이며 또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행복이에요. 시련을 극복하는 도구인 거죠. 그렇기에 행복은 언젠가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닌 지금 느껴야 하는 감정이고, 시련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 오기 때문에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한 겁니다.

Q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비결이 있을까요?

간단하지만 어려운 것,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다르다’라는 단어는 하나인데 다름의 종류는 수백 수천 가지가 될 수도 있거든요. 한 가지 잣대를 여러 사람에게 적용하려고 하면 안 돼요. 그러지 않기 위해선 그때그때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삶은 종잡을 수 없는 거야’라고 상황에 따라 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따른 수많은 고민을 하고, 그와 비슷한 상황에서의 기억을 토대로 최고일 것 같은 것으로 행동하는 거죠.
가변적인 사회에서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그때그때 고민하지 않으면 프랑스 작가 폴 부르제의 말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가 되는 겁니다.

Q

직장에서 성장하는 인재가 되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성장 말고 성장감으로 표현해 볼게요. 보통 일은 재미가 없죠? 일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간혹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일이 즐겁기보다 일을 통해 얻는 결과나 성취감이 좋은 거죠. 그걸 일 자체에 대한 즐거움이라고 착각하면 안 돼요.
그렇다면 이 재미없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앞서 말했듯 행복감이 시련과 고난을 이기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행복감은 재미없는 것도 할 수 있게 하는데, 이 대단한 행복감의 한 종류가 바로 성장감입니다.
대체로 성장감을 잘 느끼는 사람들은 초보자예요. 한 분야에서 이제 막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초년생은 조금만 배워도 대단한 것을 이룬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재미없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름 즐겁게 버틸 수 있는 거죠.
반대로 전문가는 어떨까요? 전문가의 인지심리학적 정의는 슬프게도 ‘일을 잘해놓고도 만족감을 못 느끼는 사람’입니다. 전문가니까 성장감이 매우 더디겠죠. 물론 더딘 만큼 초보자보다 큰 성장감이 있겠지만, 그 긴 지루한 시기를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예컨대 회사에서는 내가 안 해 본 타 부서의 일을 경험해 보거나 개인적으로는 내 직업과 무관한 분야에 도전해 보는 거예요. 내 전공 분야에서 느끼는 무료한 정체감을 전혀 다른 분야에서 얻은 성장감으로 이겨내는 거죠.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자신이 물리학에서 정체됐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게이트볼을 치면서 그 순간을 견뎌 그다음의 성장감과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하잖아요? 성장감을 얻으려면 우리는 늘 초보자의 마음과 자세가 필요해요.

Q

마지막으로 석유공사 임직원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일을 많이 해서 오는 게 번아웃이 아니라 일만 해서 오는 것이 번아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학교에 다닐 때는 다양한 사람들과 지내다가 대학에 입학해 전공 분야가 생기고 해당 분야로 취업하고 나면 우리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잦아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면 정체가 되죠. 그런데 창조는 나와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거나 그들에게 나의 일을 설명할 때 일어나고요. 그리고 또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면서 얻은 성장감으로 번아웃을 막고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번아웃을 막는답시고 워라밸을 일과 가정에서 찾는데 매우 큰 오산이거든요. 삶을 테이블로 예로 들자면 일과 가정이라는 다리가 두 개뿐인데 넘어지지 않게 밸런스가 맞출 수 있을까요? 물론 정말 절묘하게 맞출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되겠어요. 그러니 간당간당하게 살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일도 가정도 아닌 취미라는 다리가 하나 더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셋 중 어느 하나가 조금 안 맞아도 웬만하면 쓰러지지 않는 테이블이 되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지치지 않고 행복감을 느끼려면 일과 가정, 그리고 나 자신과의 적정한 밸런스와 이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들이 필요해요.

글왕보영      사진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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