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il Focus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략 비축유 방출

전략적 목적의 석유 비축은 상업적 목적의 석유 비축과는 달리 산유국의 정정 불안이나
국제정세 불안으로 인한 공급 부족 사태와 같은 비상시를 대비해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은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 석유 시장의 공급 부족에 대응해
하루 1백만 배럴이 넘는 전략 비축유를 시장에 방출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IEA의 비상시 대응 체제, IEA의 전략 비축유 방출 사례,
그리고 에너지 전환기를 맞아 전략적 목적의 석유 비축이 중요성을 더해가는 이유를 살펴보기로 한다.

비상시 대응을 위한 IEA 회원국들의 석유 비축

국제에너지기구(이하 IEA)는 1974년 11월 국제에너지계획(이하 IEP) 협정에 따라 경제개발협력기구(이하 OECD) 안의 정부 간 기구로 발족했다. 1973년 1차 석유 위기 직후 세계 석유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산유국 공동체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대응하고자 에너지 소비국 중 선진국들이 OECD와는 별도의 독립기구로 설립한 것이다. 이후 IEA는 산유국과 소비국 사이의 협력을 통해 세계 에너지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는 쪽으로 기능을 정립했다. IEA 회원국은 현재 미국, 일본, 한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석유 소비국과 노르웨이, 캐나다, 멕시코 등 중동 이외의 일부 산유국을 포함해 모두 31개국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 3월부터 정식 회원국 자격으로 활동하고 있다.
IEP는 IEA의 근간이 되는 협정으로 회원국 전체 소비의 7%를 넘는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했을 때 비상 대응 조치를 발동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IEA는 IEP 규정상의 비상 대응 조치 발동을 위한 조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세계 석유 공급의 상당량이 감소하는 경우에도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책을 강구할 수 있다. 비상시 대응책으로는 비축유 방출, 수요 억제, 연료 전환, 국내 생산 확대 등이 있는데, 이중 비축유 방출이 대표적이다.
IEA 회원국들은 비상시 비축유 방출을 위해 자국 순수입 물량의 90일분 이상을 비축하는 의무를 갖는다. IEA 자료에 의하면, 회원국 중 순수입국들의 석유 비축 일수는 2022년 3월 기준으로 정부 비축 72일분과 민간 비축 84일분을 합쳐 156일분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 비축 103일분, 민간 비축 85일분으로 모두 188일분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회원국 중 미국과 노르웨이, 캐나다, 멕시코, 에스토니아는 순수출국이다. 미국은 2013년까지 세계 최대의 석유 순수입국이었지만, 자국 내 셰일오일 생산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2021년 4월부터 순수출국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정부의 전략 석유 비축(SPR) 약 5억 배럴과 민간의 상업용 석유 비축 약 12억 배럴을 비축하고 있는 최대 비축유 보유국이다.

석유 시장 안정을 위한 IEA의 전략 비축유 방출 사례

과거 IEA의 비축유 방출 사례는 1991년 걸프전쟁 시기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시기, 2011년 리비아 사태 발생 시기로 모두 세 차례가 있었다. 그리고 2022년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비축유 방출이 진행되고 있다. 비축유를 방출하는 방식은 각 회원국들이 자율적으로 판매와 대여를 적절히 혼합한다.
먼저 걸프전쟁 시기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쿠웨이트 유전이 파괴되고, UN이 주도한 이라크에 대한 석유 금수 조치로 이라크의 석유 공급이 중단된 사건이 발생했던 1990년 8월부터 1991년 2월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IEA는 1991년 1월 11일 비상 대응 프로그램 시행해 하루 250만 배럴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이중 비축유 방출은 하루 190만 배럴이고, 나머지 하루 60만 배럴은 수요 억제와 연료 전환, 생산 확대로 충당하기로 했다. 비상 대응 프로그램은 같은 해 3월 6일에 종료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IEA 회원국이 아니었으므로 비축유 방출 의무는 없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시기는 미국 멕시코 만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영향으로 미국의 석유 생산 시설이 파괴되고 공급 차질이 발생한 2005년 9월이다. IEA는 9월 2일 허리케인 피해 상황을 바탕으로 30일간 6,000만 배럴(하루 2백만 배럴)의 비축유 방출과 생산 확대 등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정부의 전략 비축유를 290만 배럴 방출했다.
2011년 리비아 사태 발생 시기는 계절적으로 여름철 수송용 석유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를 앞두고 아프리카 주요 산유국인 리비아의 정정 불안으로 원유 생산 중단이 계속되던 때다. 그해 6월 OPEC 마저 증산 합의에 실패하자 IEA는 6월 23일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한 달 동안 약 6천만 배럴(하루 2백만 배럴)의 물량을 석유 시장에 방출했다. 당시 비축유 방출에는 개별 회원국의 소비량이 전체 회원국 석유 소비량의 1%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이 빠지면서 12개 회원국만 참여했다. 우리나라는 참여 회원국 중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340만 배럴의 전략 비축유를 정유회사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방출했다.
올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대응한 서방국의 제재로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이 축소되면서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IEA는 석유 시장 안정을 위해 지난 3월 1일과 4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비축유 방출을 결정하고 올해 10월까지를 기한으로 방출을 시행 중이다. 비축유 방출 규모는 3월 합의한 물량이 6천만 배럴, 4월 합의한 물량이 1억 2천만 배럴로 모두 1억 8천만 배럴이다. 그런데 IEA는 4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5월부터 10월까지 2억 4천만 배럴(하루 약 133만 배럴)의 비상 비축유가 시장에 공급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이 약속한 자발적인 추가 방출량을 합한 물량이다. 우리 정부의 방출 물량은 3월 할당량 442만 배럴, 4월 할당량 723만 배럴로 모두 1,165만 배럴이다.

에너지 전환기에 중요성이 더 커지는 전략 비축유

전략 비축유를 활용한 IEA의 비상시 공동 대응은 앞으로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 등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는 에너지 전환 정책이 추진되는 가운데 화석에너지 생산을 위한 투자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에너지 전환기를 맞아 미래 석유 수요의 불확실성, 각국 정부의 화석에너지 개발 및 이용에 대한 규제, 투자자들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요구 등으로 석유 E&P(탐사와 생산) 투자와 정제설비 투자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원유 및 석유제품 생산을 위한 설비 투자의 위축으로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능력이 확보되지 못하면 석유 시장의 안정성은 훼손된다. 공급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국제 석유 시장에서 예기치 못한 공급 차질이 발생했을 때 이를 대체해서 공급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석유 시장에서 발생하는 조그만 사건과 사고에도 유가는 급등한다. 향후 에너지 전환과 더불어 석유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가 보유하는 전략적 목적의 석유 비축이 더욱 긴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달석(에너지경제연구원 명예 선임연구위원)

Other Articles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