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8일 러시아로부터의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세계 각국의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석유의 공급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지정학은 지리(geography)와 국가 간 관계의 연결성을 국제관계의 기본적인 측면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지정학의 핵심적 요소는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라고 볼 수 있다.
석유 공급이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자주 교란되는 근본적인 원인과 과거 대표적인 석유 공급의 교란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석유 공급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는 무엇보다 석유의 매장량이 지역적으로 편재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BP의 최근 통계에 의하면, 현재 세계적으로 석유의 확인매장량은 약 1조 7천억 배럴이다. 그런데 석유의 매장지를 보면, 최대 매장 지역은 중동으로 전 세계 매장량의 48.3%를 차지하고 있다. 중동 국가 중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가 3천억 배럴을 보유하고 있고, 이란·이라크·쿠웨이트·UAE 등 다수의 국가가 1~2천억 배럴을 보유하고 있다. 중동 이외의 지역으로는 중남미가 세계 매장량의 18.7%를 차지하며, 특히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다.
중동과 중남미 다음으로 대표적인 석유 매장 지역은 구소련과 아프리카다. 구소련의 석유 매장량은 8.4%(러시아 6.2%)를 차지한다. 러시아 매장량 규모는 약 1천억 배럴로 사우디의 1/3에 불과하지만, 현재의 생산량은 양국이 비슷하다. 러시아의 매장량 대비 생산량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의 석유 매장량은 세계 매장량의 7.2%를 차지하고, 국가별로는 리비아와 나이지리아의 매장량이 많다. 나머지는 북미 지역이 14%(캐나다 9.7%), 아시아 지역이 2.6%를 차지한다.
이처럼 세계 석유 매장량의 분포는 지역적인 편중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역 편중성이 개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게다가 주요 매장지역인 중동, 아프리카, 남미와 구소련 지역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그러므로 이들 매장지역에서 원유가 생산되어 소비지역으로 공급되는 데에는 항상 위험이 내재해 있다.
석유는 매장지역의 편재성으로 인해 생산지와 소비지의 불일치가 크게 발생하므로 국가 간 교역이 불가피하다. 세계 최대 교역상품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석유다.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석유의 71%는 교역이 이루어진 후에 소비되는데, 원유 46%와 석유제품 25%로 구성된다.
세계 주요 매장지역에서 생산된 원유는 대부분 유조선에 선적되어 세계 소비지역으로 수송되고 일부는 송유관을 통해 소비지역으로 수송된다. 해로로 수송되는 원유는 해협과 운하 등 매우 좁은 통로를 통과해야 하는데,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병목지점(choke point)’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대표적인 병목지점은 이란과 오만 사이에 있고 페르시아 만과 아라비아해(오만만)를 연결하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하루 약 1,900만 배럴의 원유가 수송되는데, 이는 세계에서 사용되는 원유의 20%를 넘는 양이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석유 운송에 장애가 생긴다면 전 세계 석유 공급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게 된다. 특히 중동산 원유에 크게 의존하는 아시아 국가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외 병목지점으로는 수에즈 운하, 바브엘만데브 해협, 파나마 운하, 터키 해협, 말라카 해협을 포함하며, 이에 더해 발틱해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발틱해는 러시아가 수출하는 석유를 선적하는 곳이다. 석유의 해상 수송로에 위치한 병목지점들은 사고나 국가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수송에 중대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다. 송유관을 통한 석유의 수송 역시 사고와 국가 간 분쟁에 의해 쉽게 차단될 수 있다. 따라서 석유 공급은 생산지역에서 소비지역으로 수송되는 과정에서도 위험을 수반한다.
과거 지정학적 요인에 의한 공급 교란은 국가 간 군사적 충돌이나 산유국의 내전 등 정정 불안에 의한 석유 생산시설의 파괴나 봉쇄에서 비롯된 것들이 가장 흔한 형태다. 여기에는 1980년 10월의 이란-이라크 전쟁,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2011년 2월 이후 리비아 내전에 의한 공급 차질 등 수없이 많은 사례가 있다. 반면에 국가 간 분쟁으로 석유 수송로의 병목지점이 지속적으로 봉쇄된 경우는 없었다. 이란이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여러 이유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위협한 적은 많았으나 이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한편, 역사적으로 석유의 수출은 국제관계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1973년 아랍 국가들의 서방 국가들에 대한 석유 금수다. 그해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공함으로써 발발한 4차 중동전쟁 직후 중동 산유국들은 아랍에 대한 각국의 성향을 분류해 ‘비우호국’에게는 원유 수출을 중단했다. 이와 함께 중동 산유국들은 배럴당 3~4달러였던 유가를 12달러로 인상했다. 이른바 제1차 석유위기로 불리는 사건이다. 석유 금수가 정권 붕괴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2010년 4월 러시아는 자국이 책정한 송유관 요금에 반발하는 키르기스스탄에 대해 원유 수출을 중단했다. 키르기스스탄은 구소련 국가의 하나로 원유 공급의 대부분을 러시아에 의존하며 러시아 송유관으로 원유를 수송한다. 러시아가 원유 수출을 중단하자 키르기스스탄의 유가는 폭등했고, 원유 금수를 시행한 일주일 후 당시 대통령이었던 바키예프는 사임했다.
이런 사례와는 반대로 현재는 미국이 정치적 이유로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특정 산유국을 대상으로 석유 수출을 제재하고 있다.
2018년 5월 미국은 이란 핵합의(JCPOA)에서 탈퇴하고 이란에 대해 석유 수출을 제재하기 시작했다.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외국 금융기관과 기업은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2차 제재’를 통해 이란으로부터의 석유 수입을 막는 방식이다. 미국은 이란의 핵 개발 문제로 2012년 6월부터 2015년 말까지의 기간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재한 바 있다. 또한 미국은 2019년 1월부터 베네수엘라에 대해 마두로 대통령의 부정선거에 의한 연임을 이유로 베네수엘라로부터의 원유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석유 금수 조치로 세계 석유시장에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고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석유는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공급 교란이 자주 발생할뿐더러 수요와 공급의 탄력적인 조정이 어렵다는 특성으로 다른 어느 상품보다 가격의 변동성이 큰 상품이다.
글이달석(에너지경제연구원 명예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