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봄 말고 색다른 봄을 느끼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거제도로 떠날 것.
바다에 점점이 올망졸망 떠 있는 섬 사이로 봄이 일렁이고, 꽃은 바람결에 봄 향기를 전한다.
바닷가에 가만 앉아 있으면 몽돌 사이로 빠져나가는 파도의 노래가 우리의 마음까지 둥글게 녹인다.
석유공사 거제지사 곳곳에 만개한 봄을 느끼고 싶다면, 지금 망설이지 말고 떠나보자.
벽돌로 만들어진 네모난 창밖으로 잔잔한 바다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위에 조심스레 걸터앉기만 해도 그림이 되는 곳, 거제시 장목면 복항마을에 있는 매미성 이야기다.
매미성은 지난 2003년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시민 백순삼 씨가 언제 또 닥칠지 모르는 자연재해로부터 작물을 지키기 위해 수십 년 홀로 쌓아 올린 성벽이다. 태풍 매미가 휩쓸고 갔을 당시 그간 농사지은 작물은 고사하고 땅에 있는 흙까지 다 쓸어가 바위가 드러났을 정도였다고. 이런 자연재해를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마음에 손수 바위 위에 견치석을 쌓고 시멘트를 메우길 반복하다 보니 완성된 모양새가 마치 중세시대에 있을 법한 성의 모습이 된 것이다.

그 규모나 디자인이 건축 설계도 한 장 없이 그의 머릿속에 있는 조감도로만 지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 흙의 곡선을 살리며 쌓은 매미성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어두컴컴한 통로 사이로 빛이 드리운다. 성곽 사이로 난 네모난 창이 바로 사람들이 매미성을 찾는 이유 중 하나인 포토 스팟이다. 성곽의 벽이 사진의 프레임을 만들고 프레임 밖 바다가 배경을 담당한다. 그 곳에 살포시 걸터앉기만 해도 더없이 완벽한 사진이 된다. 사진을 찍은 후 성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근처 몽돌해변은 물론 맑은 날에는 거가대교까지 내다 볼 수 있다.
예구마을 끝머리에 궁둥이처럼 튀어나왔다고 해서 ‘공곶이’라고 불리는 이 곳은 가장 먼저 노란 봄소식을 전하는 마을이다. 비밀의 정원에 만발한 노란 봄, 수선화를 만나기 위해서는 30여 분 정도 발품을 팔아야 한다. 마을 포구에서 산비탈을 따라가다 보면 동백나무 터널로 이뤄진 333층 돌계단과 마주하게 된다. 그 위로 흩뿌려진 빨간 동백 카펫을 밟으며 한참 내려가면 노부부가 평생을 일궈낸 자연경관지인 공곶이가 눈 앞에 펼쳐진다.

원래 공곶이는 1868년 병인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천주교 신자 윤사우 일가의 은신처였다. 이후 1969년 이곳에 터를 잡은 부부가 귤 농사를 지었으나, 전례 없는 한파로 귤 수확에 실패했다고 한다. 이후 호미와 삽, 곡괭이로 비탈진 황무지를 일구고 동백나무와 종려나무, 수선화, 조팝나무 등을 기른 것. 애초에 관광을 목적으로 만든 조경이 일품인 화목원은 아니지만 그들의 삶 전부가 심어진 꽃밭은 거제 8경에 꼽힐 정도로 잔잔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모든 것이 경쟁이고 또 치열한 일상에서 소박하고 꾸밈없는 행복이 필요하다면, 공곶이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모래가 있는 여느 해수욕장과는 달리 거제의 해수욕장엔 ‘몽돌’이 있다. 몽돌은 검은 빛깔의 조약돌로, 귀퉁이가 동글한 조약돌을 지칭하는 경상도 방언이다. 거제에서 가장 유명한 학동흑진주몽돌해수욕장은 우리나라 자연의 소리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밀려온 바닷물이 몽돌과 부딪히고 빠져나가면서 나는 ‘쏴르르 쏴르르’ 몽돌 구르는 소리가 더없이 청량하다.
바다의 성실함이, 세월이 새겨진 몽돌 구르는 소리만 듣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학동흑진주몽돌해수욕장 뒤로는 노송져 산책하기 좋은 그물개 오솔길과 무지개 색으로 꾸며진 피아노 건반, 포토존 등도 알차게 꾸며져 있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근포 땅굴을 자연 동굴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데, 사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당시 포전지 용도로 만든 뼈아픈 역사의 장소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마을 창고로 쓰이다가, 최근엔 거제의 새로운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땅굴이 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 SNS에 즐비한 인증샷을 보고 나면 ‘나도 한 장 찍어야지’ 하는 의지가 절로 생긴다.

사진은 찍은 시간에 따라 그 매력이 다르다. 그러니 어느 하나 고르기가 쉽지 않다. 낮의 푸름을 담은 사진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고, 노을 질 무렵 찍은 사진은 라라랜드의 한 장면 같은 황홀함이 있다. 어느 시간대에 어떤 분위기로 찍을 것인지 정했다면 이제 땅굴을 찾아갈 차례. 마을에서 땅굴에 가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처음 온 이들도 헤매지 않도록 마을 곳곳에 세워진 이정표가 땅굴 앞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기 때문. 땅굴은 총 3개가 있는데, 3번 땅굴이 관광객에게 인기가 가장 많다. 긴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면, 부끄러움은 잠시 내려놓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달콤한 포즈를 취해보자. 순간의 달달함이 사진으로 영영 기억될 것이다.
‘거제’ 하면 바람의 언덕의 푸른 잔디와 빨간 풍차가 공식처럼 떠오를 정도로 바람의 언덕은 여전히 거제 제1의 관광명소 역할을 맡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언덕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언덕 아래 맑은 옥빛 바다 일 것이고, 변한 것이 있다면 오가는 사람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광뿐일 것이다. 언덕 위의 풍차가 그리 대단한 풍경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덴 이유가 있다. 바다가 몰고 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만들어낸 기암괴석은 거제도에서도 남부 해안 절벽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풍차가 조성된 초기와는 달리 요즘엔 곳곳에 조형물을 보는 재미도 가득하다. 단순히 바닷물과 바람을 막기 위한 역할을 넘어 작품으로 승화된 방파제, 이준재 작가의 ‘사람과 개’ 도자 조형물, 소원과 사랑이 빼곡하게 적힌 자물쇠, 동전을 넣어 전화 한 통 걸고 싶게 하는 공중전화까지 소소한 재미가 있다. 근처에서 구경을 다 마치고도 발걸음을 떼기가 아쉽다면 봄볕을 만끽하며 산책을 해보는 것도 좋다. 풍차 뒤로 조성된 데크를 따라가면 도장포까지 30여 분 정도 소요되는 바람의 언덕길 1구간을 걸을 수 있다.

리아스식 해안인 거제도는 바다 풍경이 빼어나다. 특정 장소가 아니더라도 발길이 닿는 곳마다 절경을 이룬다.
걷는 것보다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거제도에서도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한 거제 남부 홍포마을을 권한다. 홍포마을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여차몽돌해변까지 이어지는데, 해넘이가 장관인 겨울이 아니더라도 거제의 풍광을 다양한 각도로 즐길 수 있어 사시사철 찾는 이들이 많다. 게다가 왼편엔 바다가, 오른편엔 숲을 끼고 달리는 도로는 서로 다른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차를 멈추고 바다를 전망할 수 있는 3개의 전망대가 있다. 특히 최근에 다시 조성하면서 별다른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목재로 최대한 심플하게 만들어 모던함은 물론 자연과도 조화롭다. 그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병대도 전망대에 올라서면 바다 위로 각기 다른 자태를 뽐내는 대소병대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가시거리가 좋은 날에는 통영 소매물도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글왕보영 사진, 영상신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