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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도화지 위에 낭만이라는 색을 채우다

전남 여수

여수의 바다는 생계의 터전인 동시에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낭만의 바다이기도 하다.
365개의 섬이 바다에 수놓아져 있고, 사색에 잠겨 걷기 좋은 그림 같은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펼쳐지며,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는 빛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너와 함께 걷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호에서는 석유공사의 지하비축기지도 있는 여수로의 낭만 여행을 떠나본다.

세상의 모든 기도가 모이는 곳
향일암

여수 돌산도 끝자락에 자리한 향일암은 해맞이 장소로도 유명한 사찰이자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관음 기도 도량으로도 꼽힌다.
향일암에 오르기 위해서는 동백 가로수길을 따라 1km 정도 걸어 올라야 하지만,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 풍경과 귀여운 동자 석상을 만나는 재미에 오르막길의 수고로움은 금세 잊힌다. 마침내 291개의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해를 바라보다’라는 뜻을 품고 있는 향일암을 만나볼 수 있다. 향일암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은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빼어나다.

향일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를 꼽으라면 바로 ‘해탈길’이다. 등용문을 지나 대웅전을 향하는 길에 만나는 거대한 바위인데, 이 바위를 처음 마주하는 이들은 멈칫하게 된다. ‘과연 지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길이 때문이다. 열 걸음이 채 안 되는 짧고 좁은 길이지만 이 길을 통과한 후 마주하는 풍경의 여운은 제법 오래간다. 왜 이 기암괴석 위에 굳이 사찰을 지었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단번에 풀리게 되는 순간이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그 바다 위에 수를 놓은 섬, 그리고 바다와 맞닿은 하늘의 잔잔함과 평온함을 마음에 차곡차곡 담고 있노라면 마치 속세에서 자연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것 같은 느낌이다.

동백의 섬
오동도

멀리서 내려다본 모습이 오동잎처럼 보이는 데다 오동나무가 유난히 많아 이름 지은 오동도. 현재는 이곳에서 자생하는 동백나무로 더 유명해져 ‘동백섬’, ‘바다의 꽃섬’이라 불린다. 섬에는 이 섬의 명물인 동백나무 3,0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조릿대의 종류인 이대를 비롯하여 참식나무·후박나무·팽나무·쥐똥나무 등 193종의 희귀 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기점이자 종점이기도 한 오동도에 가기 위해선 섬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방파제를 따라 15여 분을 걸어야 한다.

동백꽃은 3월 중순에 절정을 이루지만, 한겨울에도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때 이르게 핀 붉은 동백을 만나볼 수 있다.
오동도는 대체로 경사 없이 완만한 덕분에 섬 전체에 탐방로가 거미줄처럼 촘촘히 조성되어 있다. 탐방로를 따라 오랜 세월 파도에 깎여 조각된 기암괴석을 보는 것도 오동도의 재미 포인트다. 잔잔한 산책보단 다이내믹한 레포츠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취향에 따라 동백 열차, 유람선, 모터보트에 몸을 맡겨도 좋다. 오동도 입구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이나 모터보트에 탑승하면 오동도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은 물론, 병풍바위, 용굴, 지붕바위 등을 만나볼 수 있다.
*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동백열차, 유람선, 모터보트 등의 운영이 유동적이므로,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여수에서 숨은 명소 찾기
큰끝등대

요즘 SNS에서 여수 숨은 명소로 떠오르는 ‘큰끝등대’. 여수에서 오래 산 이들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포털 사이트 지도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탓에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여수 관광 웹드라마 <호접몽> 촬영지 중 하나로 등장한 이곳은 ‘절벽 끝에 있는 큰 등대’라고 하여 큰끝등대라 이름 지어졌다. 오지를 즐기는 낚시꾼에게는 심심찮게 알려진 곳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했던 곳으로 최근엔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며 여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토 스폿이 되었다.
큰끝등대를 가려면 일단 내비게이션에 ‘여수 돌산읍 평사리 산 1-1’을 검색해야 한다. 주소를 찍고 도착한 공터에서 당황하지 않고 노란색 표지판 옆길로 들어가 첫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10여 분 걷다 보면 사진에서 보던 등대를 만날 수 있다. 유화 같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등대도 그림 같지만, 등대와 함께 병풍처럼 펼쳐진 해안 절벽의 시원함에 답답했던 마음이 탁 트인다.

국내 최초, 바다 위를 건너는 케이블카
여수해상케이블카

바다뿐 아니라 산이나 강을 건너는 케이블카를 전국에서 찾아보기 쉬운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최초인 것엔 다 이유가 있는 법. 국내 최초 바다 위를 건너도록 설계된 여수해상케이블카는 돌산공원 탑승장에서 출발해 오동도 입구에 위치한 자산공원 탑승장까지 운행한다. 거리 1.5km, 약 13분 운행되는 케이블카에 몸을 실어 바다를 유유히 건너는 동안 창밖으로 섬섬여수의 진짜 풍경을 만나게 된다. 특히 여수해상케이블카의 장점은 낮과 밤 모두 운행되어, 돌산대교 못지않게 아름다운 거북산대교와 시내 전망을 내려다보며 여수 밤바다를 보다 특별하게 감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낮보다 아름다운 밤
여수 야경

다른 도시에서 맞는 밤은 오늘의 여행은 여기서 끝이라는 듯 알려주는 신호 같지만, 여수에선 아니다. 산 너머로 마침내 해가 넘어가면 기다렸다는 듯 거리의 가로등이, 도시의 네온사인이, 항구에 떠 있는 배와 섬과 섬을 잇는 다리의 조명이 찬란하게 불을 켠다. 순간순간 색을 달리하는 빛이 만들어내는 판타지에 넋을 놓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 <라라랜드>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황홀한 기분이다.

‘여수 밤바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돌산대교로, 여수의 육지와 돌산도를 잇기 위해 지어졌다. 여수를 여행 중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꼭 건너게 되는 돌산대교를 제대로 보려면 돌산공원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 돌산 공원에 서면 어둠을 화려하게 수놓는 ‘A’자 형태의 주탑과 함께 장군도까지 볼 수 있다. 가만히 서서 보는 것보다 직접 걷고 즐기고 싶다면 빨간 등대가 있는 하멜등대나 여수 낭만포차 거리도 좋다. 추운 겨울, 거리의 버스킹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 바다가 적막하지 않은 것은 파도와 청춘들의 발걸음이 연주자의 부재를 대신하고 사색의 밤에 낭만을 더하기 때문은 아닐까.

글왕보영         사진, 영상신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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